13세기 몽골의 전사 칭기즈칸과 그의 아들들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다. 칭기즈칸은 1204년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1215년 금나라의 수도 중도(지금의 북경)에 입성했으며 1218년 서요를 병합했다. 또 서역 정벌에 올라 러시아와 이슬람 세계를 정복하는 등 서방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동서방불패의 신화,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건설한 근원지인 칭기즈칸의 땅 몽골. 지금도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만 벗어나면 바로 칭기즈칸과 그의 전사들이 호령하던 드넓은 초원지대와 만난다. 그곳은 세월의 흐름이 정지돼 있다. 집도 가축도 사람들의 복장도 먼 옛날 초원을 떠돌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다. 말을 모는 소년의 얼굴에도 손님을 맞을때 전통 복장에 한쪽 무릎을 꿇는 촌로의 모습에도 몽골 전사들의 기풍이 넘쳐 흐른다.
그러나 지금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어쩌면 너무나 초라하게 살아가고 있다. 몽골은 국민소득 500달러에 TV 한대도 못만드는 나라로 전락했다. 밖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막혀 뻗어나갈 길이 없다. 그런 몽골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과거에 대제국을 건설하고 세계를 호령했다는 자존심 하나다. 바로 그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몽골 최대의 축제인 '나담'이다.
나담은 원래 몽골어로 놀다라는 뜻의 '나다흐'에서 유래됐다. 이날은 몽골의 전통적인 여름 축제이며 동시에 몽골인민혁명기념일이기도 하다. 옛날 몽골 지도자들은 영웅의 탄신, 승전, 결혼식날 잔치를 열고 군사시범을 벌였으며 이때 일반인들은 씨름, 말타기, 활쏘기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담의 기원이다.
나담축제는 사회주의 혁명이전에는 7명의 봉건제후가 공동으로 주체하는 행사였으나 1921년 7월 11일 혁명 이후에는 이날을 기념해 매년 7월 11일부터 3일간 열리는 관제 행사로 변했다. 시골에서는 마을별로나 아이마트(도)별로 울란바토르 보다 며칠 앞서 나담축제를 벌인다. 국가가 주도하는 나담축제는 11일 대통령이 참석하는 개막행사를 시작으로 3대 민속경기인 씨름(에른), 활쏘기(고른), 말타기(나담)경기가 펼쳐진다. 몽골에서 나담축제의 열기는 참으로 대단하다. 7월11일부터 3일간은 모든 관공서와 대부분의 상점, 백화점도 문을 닫으며 심지어 공항의 비행기까지 뜨지 않는다. 축제가 시작되는 11일 아침에는 울란바토르 시내 중심의 수쿠바터르광장앞에서 시작해 교육부 앞 광장까지 군과 학생, 직장대표들이 참석하는 시가행진이 벌어진다. 축제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는 수많은 시골사람들이 나담축제의 말타기에 참석하기 위해 말를 타고 구름처럼 울란바토르로 몰려든다.
나담축제중 가장 인기있는 종목은 씨름. 몽골리안들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그해 씨름의 우승자는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씨름왕이 대통령보다 더 인기가 높다는 것이 몽골인들의 설명이다. 씨름왕은 전국에서 예선을 거쳐 512명이 참가해 9번을 계속 승리한 선수가 차지한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종목은 단연 말타기다. 11일부터 13일까지 오전과 오후 각각 한차례씩 모두 6번의 말타기가 열린다. 2세말, 3세말, 4세말, 5세말, 6세이상 그리고 거세하지 않은 숫말이 달리는 여섯 종류의 레이스가 있다. 각각 820마리의 말과 기수가 참가, 시 외곽에서 울란바토르의 야르마크까지 15~30㎞ 구간을 달린다. 놀랍게도 기수들은 대부분 10세 전후의 어린이들이다. 축제기간동안 야르마크는 말을 타고 응원나온 가족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활쏘기는 남녀불문하고 8세 이상이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경기. 활길이의 45배 거리인 75m 떨어진 표적을 맞추는 경기며 단지 여자는 60m, 8~14세 어린이의 경우 남자는 나이에 다 4m를, 여자는 나이에다 3m를 곱한 거리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이처럼 3일 내내 축제 열기로 뜨겁게 달아 오른다. 그러나 나담축제는 사실 외부로 알려진 것보다 규모가 작고 단조로우며 국가적인 행사라기엔 초라한 수준이다. 다만 여느 축제보다 원시적이고 특히 몽골인의 힘이 느껴진다는데 매력이 있다. 씨름, 말타기, 활쏘기 모두 몽골인들 강인함과 진취적 기상, 호전성을 엿보게 하는 대 목들이다. 그것이 바로 칭기즈칸의 후예 몽골인들이 천년을 지키며 살아온 자존심인 것이다.
글=은현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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