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2 한.일 월드컵 일본은 이렇게 준비한다(1)

"6월 4일 사이타마(埼玉)에서 벨기에와 예선 첫 경기를 갖고 9일은 요코하마(橫浜)에서 러시아와, 14일에는 오사카(大阪)에서 튀니지와 예선 경기를 갖습니다". 도쿄 최대의 스포츠용품 밀집지역 오차노미즈에서 만난 30대 축구팬은 일본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일정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은 반드시 본선 토너먼트에 오를 것"이라 희망을 밝히고는"주위에서 직접 경기를 관전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입장권을 구하기 어려워 다들 고민"이라 월드컵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열도가 바야흐로 월드컵 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있다고. 지난해 12월 1일 부산에서 열린 본선 조추첨 행사를 계기로 일기 시작한 일본의 월드컵 붐이 개막 D-150일을 맞은 올해 원단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조추첨 결과 일본은 전체 8개조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축구연맹(FIFA)순위 20위권에 드는 팀이 한 팀도 없는 상대적으로 약한 H조에 포함됐다. 일부 성급한 호사가들은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행운의 조편성이다. 이번에 16강 진출을 이루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 정도다.

또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나이지리아 등 축구 강호들이 포진해 죽음의 조로 불리는 F조가 일본에서 예선전을 치르게 된 것도 일본 축구팬들로서는 더없는 호기다. 한국에서 예선전을 갖는 프랑스 대표팀이 가고시마(鹿兒島)를 전지훈련지로 결정한 데 이어 브라질이 일본에 캠프 설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것도 2002년 월드컵 일본 조직위원회(JAWOC) 관계자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여기다 아사히.요미우리 등 신문들은 일본이 월드컵 대회를 개최해 3조 2천억엔의 경제 특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사회공학연구소 발표를 실어 10년여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인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입장권 2차 판매분(9만2천매)구입 신청을 받은 결과 72만5천건이 쇄도, 평균 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일부 경기는 최고 32대1을 기록하기도 했다. 2차 판매는 예상대로 지난달 20일 전경기 매진됐다.

JAWOC 홍보부장 오다지마 아키라씨는 "해외에서 팔리지 않는 입장권이 돌아오는 오는 5월쯤 3차판매를 계획하고 있는데 개막전에 매진될 것"이라 자신했다.이렇게 일본의 월드컵분위기가 고조되는 데에는 개최지 자치단체, 조직위원회의 노력도 한 몫 했다.

하루 최고 200만명이 이용하는 오사카시 우메다역 지하상가. 이 곳 한 켠에 자리한 JAWOC 오사카지부 홍보코너에는 미니 축구골대를 비롯, 대형 축구공모양 애드벌룬과 한일월드컵 엠블렘 깃발 등으로 장식해놓고 매일 너댓차례 이벤트를 갖는다. 무료 얼굴 페인팅은 초등학생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고, 미니 축구 골대에 슛을 날려 축구공 속도에 따라 경품을 지급하는 이벤트에는 도전하려는 중고등학생들로 북적댄다.

결승전이 열리는 요코하마지부의 이벤트는 더욱 다채롭다. D-400일 이후 100일마다 시내 일원에서 축하 음악회와 체육대회를 개최했는가 하면 요코하마경기장에서 수시로 축구관련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시 산하 18개 구(區)별로 자발적으로 결성된 월드컵지원회에서도 자체행사를 갖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코하마경기장을 지나는 지하철 노선을 '요코하마 링고(輪)'라고 새로 이름짓고 이 노선의 32개역을 각 역마다 월드컵 본선 참가 32개 국가이름을 붙여 국기와 포스터 등으로 장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고조되는 월드컵분위기와 더불어 일본에서는 공동개최국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와세다대학과 고려대, 게이오대학과 연세대의 친선경기에는 대학 친선경기로는 이례적으로 일반시민 등 5천여명의 관중이 입장, 큰 관심을 보였다. TV방송에서도 한국의 요리나 전통문화 등을 소개하는 특집프로그램이 잇따라 한국 교민들조차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가끔씩 착각이 들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달 23일 68회 생일을 맞은 아키히토(明仁)일왕이 "옛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밝혀 대회개막일이 다가올수록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월드컵을 맞이하는 일본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숙적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대회전이 삿포로(札幌)에서 개최됨으로써 악명높은 영국 훌리건들의 난동에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JAWOC은 공항에서 흔히 사용되는 X선투시 검사장치와 금속탐지기를 경기장에도 설치하기로 했지만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법무성은 난동전력자를 강제추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경찰청에서도 훌리건의 얼굴을 숙지하고 있는 스포터(대질신문 경찰관)를 투입하는 등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삿포로 현지분위기는 혹시나 발생할 지 모르는 불상사 우려에 그야말로 울상이다.

JAWOC 경비관계자는 "금속탐지기 체크시간만도 1인당 약20초, 게이트가 10군데 있어도 1분에 30명밖에 입장할 수 없어 수만명의 관중을 어떻게 제때 입장시킬 것인가가 큰 숙제"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일본인들이 정초가 되면 신사나 사찰을 찾아 가정의 안녕과 국가의 평온을 비는 기도를 올린다. 바로 하츠모데(初詣)다. 올해 일본인들의 하츠모데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바라는 기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일본 오사카에서

이명직기자 jig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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