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이인로는 파한집(破閑集)에서 말했네. "세상 만물은 그 아름다운 것만을 독점할 수 없게 하였으니

뿔이 있는 것에는 이빨을 버리게 하고

날개가 있는 것은 두 다리만 있게 했으며

이름 있는 꽃에는 열매가 없고

채색 구름은 흩어지게 되었으니

사람도 매한가지

뛰어난 재예를 주면

빛나는 공명은 주지 않는 법"

시인이여 너는

높은 누각에 올라

향기로운 술과 기름진 고기맛을 생각지 말라

진홍으로 물든 서녘하늘 바라보며

한 잔 술에 터덜터덜 걸어가는 사람

이빨도 날개도 열매도 없이

아름다운 색채도 향기도 없이

그대는 오직

외로움과 고통을 벗하며 사는 사람

-박종해 '시인론(詩人論)Ⅱ'

이인로는 고려 때 문인이다. 이처럼 시에다 옛 선인의 시나 널리 알려진 유명구를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소설에서는 액자소설인 경우이다. 이것은 문학적 기법이다.

이 시인은 이인로의 입을 빌려 세상 만물의 공평(?)함을 일르는 것 같다. 시인에게는 시 쓰는 재예가 있으니 향기로운 술과 기름진 고기를 탐하지 말라는 말!

이 엄중한 경고가 비단 시인에게만 속할까? 그리고 시인은 외로움과 고통을 벗하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새삼 가슴을 친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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