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 이명균 선생(1863~1923) 후손들이 선생의 항일투쟁사 공적이 책자 등에 잘못 다뤄져 있다며 시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관계 요로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 이명균(李明均) 선생은 일제 당시 2천섬의 사재를 처분, 5차례에 걸처 10만원의 군자금을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다.임시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찬양하여 의용단장 겸 재무총장에 임명, 군자금 조달책임자로 활약하는 등 항일투쟁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겨 박정희 대통령 정권때 대한의사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선생의 손자인 이수영(82.김천시 대덕면 화전리41)씨 등 후손들은 최근 발행된 금릉군지에 이명균 선생의 업적이 다른 사람의 업적으로 잘못 표기되어 분쟁의 소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선생은 1919년 영남 유림들이 파리 만국강화회의에 조선독립청원서를 보낸 이른바 파리장서 사건에 가담했다가 일경에 검거되어대구법원 검사국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사실이 있는데도 서울 장충단공원에 건립된 파리장서비에 등록된 유공자137명의 명단에 빠져 있다는 것.
후손들은 또 선생의 고향이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인데도 금릉군지에는 상원리로 잘못 기록돼 있다며 평생을 항일투쟁에몸바치다가 한많은 여생을 마감한 선대의 영혼에 보답하기 위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태어난 일괴(一槐) 이명균 선생은 2만원의 자금으로 김천.상주지역에 철공소를 차리고 그 이익금으로 만주지역 독립군의 군자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려다가 지난 1922년11월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명균 선생은 복역중에 심한 고문으로 사경에 이르게 되자 대구복심법원의 주선으로 가석방되었으나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이듬해향년 60세로 생을 마쳤다.
김천.강석옥기자 sok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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