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토크-화가들도 서로 교류해야

뭉쳐도 부족할 판에 뿔뿔이 흩어져서야 되는 일이 없다. 구상과 비구상, 장르별로 나뉘어 대립(?)하는 지역 미술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 작가가 들려준 얘기. "대구 풍토는 참 이상한 것 같아요. 구상 작가의 전시회에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고, 현대미술 작가의 전시회에는 구상작가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네요". 끼리끼리 몰려 다닌다는 얘기였다.

가까운 친구가 전시회를 여는데도, 장르가 다르다는 이유로 개막일에 얼굴을 내밀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시회에 가봤자 함께 어울리고 교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용기(?)를 내거나 체면을 차리지 않고 찾아가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또 술자리나 비공식적인 자리에 앉으면 상대를 욕하기에 바쁘다. 현대미술가들은 "그림을 팔기 위해 화가들의 이미지를 망치는 사람들"이라 구상 작가들을 폄하하고, 구상 작가들은 "드로잉 실력이 없으니까 어려운 개념으로 포장하는 이들이 상당수"라고 현대미술가들을 비난한다.

이같은 정서는 오는 6월 월드컵 기간중 열리는 '대구아트엑스포',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2002' 등 크고 작은 행사의 준비 과정에서 그대로 표출되곤 했다. 구상 작가나 화랑들이 행사를 주도하면 비구상 작가나 화랑들은 등을 돌리는 모습이 적지 않았다.

함께 행사를 진행하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대구 미술의 역량을 키워가도 모자랄 판에, 해묵은 감정을 앞세워 마치 이를 훼방놓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일반인들이 보면 다같은 화가들인데,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났을까.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작가와 사물을 풀고 해체하는 형식으로 그리는 작가가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구상과 비구상 화랑들이 함께 모여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대구아트엑스포의 경우 본받을 만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작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상대방에게 화합과 이해를 보여주고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희망의 빛이 보인다.

'대구 미술이 위기'라는 평가는 나온 지 오래됐다. 구상작품은 예전의 인기를 유지하지 힘들고, 현대미술은 그 자리를 채워 나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들도 함께 교류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나누어 가져보면 어떻까. 이번 봄에는 장르,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는 미술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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