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영산홍 꽃 잎에는

山이 어리고

山자락에 낮잠 든

슬픈 小室宅(소실댁)

小室宅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山 넘어 바다는

보름 살이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서정주 '映山紅(영산홍)'

영산홍이 붉게 피는 계절이다. '映'은 비칠 '영'자인데 영산홍 꽃 잎에 산이 어린다는 표현은 한자의 훈을 교묘히 활용한 재치이다. 소실댁 역시 마을 한 가운데 있기는 어렵다. 멀찌감치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밤잠이 아니라 낮잠 들 수밖에 없는 그 처지가 슬픈 것이다.

마지막 연의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는 바로 소실댁의 이미지이다. 정실이 아닌 소실의 발로 세속풍진을 걸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쓰린 상처인가.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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