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사찰음식 개발 김옥주씨

대구시 수성구 파동에 자리잡은 전통음식점 '청마루' 주인 김옥주(57)씨는 매사 빈틈이 없고 깔끔한 성격에다 한결같이 손님을 정성으로 대하는 사람이다.

올해로 7년째 맛깔스런 전통음식상을 손님들에게 내놓고 있는 그는 시류에 따라 적당히 변신하고 상황에 끼워 맞추는 식보다는 때로 경우에 맞지 않으면 손님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꼬장꼬장한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완벽보살' '2cm보살'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 바르고 반듯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탓에 주변에서는 흔히 그를 '까다롭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이순을 코 앞에 둔 지금까지 김씨는 앞뒤가 다르지 않는 합리적인 면모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왕비다방'에서 '청마루'까지 30년 가까이 찻집과 음식점을 경영해온 그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그의 성격을 좋아해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불가에서는 분별심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허례허식이나 형식 같은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김씨의 면모는 그의 지나온 발자취에서도 잘 드러난다.

20대 젊은 시절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직장생활에서 기성세대들의 양면성과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뼈저리게 느낀 김씨는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다.

다방이 해보고 싶어 문을 연 것이 중구 포정동의 '왕비다방'. 1976년 무렵의 일이다. 당시만해도 남성우월주의가 여전하던터라 여자 손님은 왕비처럼 잘 모시겠다는 뜻에서 왕비다방이라고 이름했다.

여자 손님에게는 찻잔도 화려하고 고급스런 것으로 내놓았다. 그렇다고 여성편향주의자는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보자는 순수한 뜻에서였다.

당시 왕비다방은 대구에서 처음으로 원두커피를 끓여내고 고전음악을 들려주는 등 낭만적인 분위기에다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안주인의 세심함 때문에 늘 단골손님들로 북적였다. 대학생이라면 왕비다방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유명했고, 심지어 소설에 등장할 정도로 명소였다.

담배피우는 여학생이나 손님답지 않게 무례한 학생들은 여지없이 김씨의 불호령을 맞고 쫓겨나곤 한 것이 70년대 후반 왕비다방의 풍경이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동성로로 장소를 옮겨와 아세아다방, 예전다방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지만 김씨는 특유의 깐깐하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손님들을 대해 명성을 이어갔다.

예전다방시절 우리 전통차를 별도 코너를 만들어 취급하는 등 녹차 대중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찻집 경영에 손을 떼고 집에 들어앉았다.

집에서 살림에만 열중하느라 우울증도 생기고해서 다시 일을 찾아나서다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음식이었다. 맛은 요리하는 사람의 진실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2년동안 매주 서울을 오가며 우리 전통음식을 배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사찰음식을 접하게 되면서 이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난 86년에 이사온 수성구 파동 살림집 1층에 1995년 전통음식점 '청마루'를 연 김씨는 사찰음식을 조금씩 변형해 손님들을 맞았다. 맛도 맛이지만 전통음식다운 것을 차려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때로 손님들이 상이 푸짐하지 않다고 음식타박을 하면 우리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니 두번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고 돌려보내기도 했다.

음식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먹을 만큼만 내놓는 간결한 상차림이 중요하지 않느냐는게 김씨의 반문이다. 상에 한번 올라온 반찬은 젓가락을 대지 않아도 어김없이 모두 버렸고 수저와 그릇은 매일같이 소독했다.

직원들도 처음에는 이런 김씨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그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마루 주방식구들은 조금이라도 불결하거나 뭐든 한 치라도 틀리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김씨의 고지식함에 때로 당혹해하기도 하지만 늘 바른 모습과 한 식구처럼 아껴주고 배려하는, 철저하지만 살갑게 정을 내는 그의 성격을 좋아한다.

그는 번거로움을 싫어한다. 그래서 한국걸스카우트경북지방연맹 훈련강사라는 직함 외에는 일체 외부활동을 사양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차와 예절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 빼고는 절대 남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괜한 체면치레에 신경쓰이기도 하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은 결벽한 성격 탓이다. 그런 그가 얼마전 제1회 대구음식박람회에 사찰음식을 선보였다.

며칠동안 80여종의 사찰음식을 준비하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주부들이 요리법을 일일이 메모해가는 모습을 보고는 흐뭇하기도 했다.

사찰음식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 꿈인 김씨는 이제까지 배우고 연구한 사찰음식 만드는 법을 정리한 책자를 펴내 무료로 나눠 줄 계획이다.

요즘 장류(醬類)와 장아찌 등 자연그대로의 밑반찬을 전문적으로 개발해 보급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그는 머지않아 음식점도 그만두고 시골로 들어갈 생각이다.

'청마루'는 이름에 어울리는 생각 반듯한 사람에게 물려줄 계획. 음식다운 음식을 공부해보고 싶고,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자기 분수를 지키고 처한 자리에 걸맞게 처신해야 우리 사회가 바르게 자리잡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 그는 젊어서는 하고싶어도 차마 싫은 소리를 못했지만 이제는 늙어가는 마당에 뭘 감추거나 주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욕도 내뱉고 싶다고 말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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