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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옥입니다-동요부르는 사람

지난해 겨울, 대구 도심의 한 전통찻집에서 낯선 목소리의 남자가 부르는 동요를 들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로시작되는 '겨울나무'였다. 전교생 30여명뿐인 강원도의 산골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부른 '따오기'는 가슴을 찌르르하게 했다. 덥수룩한 수염, 치렁치렁한 머리의 마흔 초입 남자. 한때 서울에서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던 그는 10여년전부터 동요에 빠져통기타 하나 들고 전국을 다니며 동요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의 노래를 한 레코드점에서 겨우 찾아냈다. 한꺼번에 예닐곱개를 주문하자 주인은 "요즘 이 동요 CD를 찾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라고 했다.꽃집을 운영하는 60대 중반의 친척은 지인이 복사해준 동요 테이프라면서 테이프가 망가질 정도로 종일 듣고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조차 바쁜 요즘, 아이들은 동요 부를 시간도 관심도 없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쳐버린 동요를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이 애창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름없는 가수- 이성원의 첫 동요음반도 그의 동요를 듣고 감격한 사람들이 음반작업을 추진해 맺은 결실이라고 한다. 관광버스내 고성방가가 금지되면서 동요를 부르는 어른들이 늘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가라오케 기계 없이는 단 한곡도 제대로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어린 시절의 노래는 입에서 술술 나온다.

옛 동요엔 하나같이 때묻지 않은 자연과 정겨운 사람들이 함께 녹아있다. 그것은 파스텔톤의 그리운 풍경화다. 삐걱이는 교실 의자와 선생님의 풍금소리, 코찔찔이 단발머리와 까까중머리 아이들, 검정고무신….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 유년시절 골짜기마을 사람들에겐 숲속에 '나의 나무' 한 그루씩이 있었는데 죽을 땐 혼이 다시 그 나무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우연히 '나의 나무' 아래에서 나이먹은 자신을 만날 수도 있다는 말에 어린 겐자부로는 크고 근사한 나무 아래에서 나이먹은 자기를 가슴두근거리며 기다리기도 했다.

운좋게 그를 만난다면 "어떻게 살아왔습니까?"하고 물어볼 준비도 했다. 이제 노인인 그는 혹 고향의 그 나무를 지나칠때 예전의 아이인 자기가 기다리고 있다 똑같은 질문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때는 어린아이였던 어른들. 옛동요는 어른들에게 아스라한 시간 건너편의 어린 '나'를 만나게 해준다. 지친 일상에서 행복을 부르는 주문(呪文)처럼. 어쩌면 그 '나'는 겐자부로의 나무처럼 물어볼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매일신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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