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력으로 취업철벽 뚫었죠

고용시장에서 대기업을 선호하는 구직자 숫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급여 수준은 물론이고, 복지나 재취업 가능성 등에서 중소기업보다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때문에 대기업 입사 시험 경쟁률은 기본이 100대 1은 되고, 조금 높아지면 수백대 1에 이를 정도. 반면 중소기업은 채용 공고를 내도 들어오는 원서가 손가락을 꼽아야할 형편이다.

중소기업엔 그나마 입사한 고학력자조차 몇달을 못버티는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4년제대 출신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10%에도 채 못미친다.

전문대 졸업생은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 더욱이 대졸 또는 전문대졸이란 학력을 가진 고학력자들이 넘쳐나면서 대기업 입사 문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5명의 전문대 졸업예정자들이 그같은 싸늘한 대기업 취업 시장의 철벽을 무너뜨렸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 채용시장에서 이변을 연출한 것. 주인공들은 노동부가 설립.지원하는 대구기능대를 다음 달 졸업하는 김충수(25.메카트로닉스과) 김성덕(25.〃) 이도협(25.〃) 박은정(21.여.전기과) 권혜영(21.여.전자과)씨. 이들은 6천여명의 임직원이 일하는 'LG.필립스LCD'(구미)에 지난 달 입사, 지금은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이 다닌 대구기능대는 매년 100%에 이르는 전국 최고 수준의 취업률을 자랑하지만 최근 10년간 배출된 500여명의 졸업생 중 대기업 입사자는 단 1명도 내지 못했었다.

중소기업들은 이 대학 졸업생 숫자의 5배 이상을 원했으나 대기업은 예외였던 것. 때문에 기능대는 '취업 불패'로 불리면서도 '취업의 질'이란 측면에서는 적잖은 허점을 노출해 온 것으로 받아들였었다.

모니터 유리 제조 장비 관리.유지 공정을 맡게 됐다는 김충수씨는 취업준비 때도 그같은 징크스가 가장 힘들게 했다고 했다.

"공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일부러 기능대학에 왔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얘기하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현실과 달랐습니다.

알찬 중소기업도 좋다고 하지만 일 배우는 데는 대기업만한 곳이 없잖습니까?"

그러나 김씨는 이제 그 벽을 자신들이 깨뜨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입사한 지 얼마 안됐지만 일터도 낯설지만은 않다고 했다.

실습에 치중하는 기능대의 교육 특성 덕분이었다.

이들이 입사한 기업은 바로 그런 장점을 알아차린 것일 터였다.

"4년제 대학 다니는 친구들에게 고민이 많습니다.

이른바 서울의 유명 대학도 아니고 지방대학의 잘 나가는 학과도 아닌 경우엔 정말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4년제 공대를 나와 연봉 1천200만원 정도의 직장에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전문대 나온 제 연봉이 2천200만원 이상이니 그 친구들의 고민을 이해할 만하지요". 김씨는 학벌에 구애받지 않고 엔지니어를 꿈꾸며 그 길만을 달려온 자신이 옳았다고 했다.

경북 영주에서 공고를 졸업하고 기계 공부를 더 하고 싶어 기능대에 진학했었다는 김성덕씨는 학벌사회가 깨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익힌 기술로 승부하는 사회가 와야 한다는 것. "공고에 가면 못난이로 취급하고 전문대는 학력이 떨어져 간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인문계 고교,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어디 한두명입니까? 스스로 내세울 수 있는 무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방 및 환경 안전분야를 맡게 됐다는 김씨는 자신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힌다면 대기업 입사도 문제 없을 것이라고 했다.

'LG.필립스LCD' 인사팀 송유진 대리는 "최근 제조업계 새 흐름 중 가장 뚜렷한 것은 우수한 기능인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전공만 고려해 신입사원을 선발했지만 요즘은 기능인력도 실력 위주로 1등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송 대리는 또 "전문대 출신은 다소 경력이 쌓이면 공정을 제어하고 장비를 수리하는 등 기술에서 나름대로의 강점을 갖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대기업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기업들이 전처럼 학력.경력 따위의 형식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

대구기능대 취업 담당 추관식 교수는 "최근 대기업들이 출신학교 이름에 연연하지 않고 실력 위주 채용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며 "구직자들 사이에 대기업 선호 추세가 강한 만큼 대기업 취업을 원하는 구직자들은 '구체적인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대학으로의 진학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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