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학자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방문길에 코끼리를 처음 보고 쓴 '상기(象記)'란 견문록에서 코끼리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몸뚱이는 소같고 꼬리는 나귀 같으며 귀는 구름장처럼 드리웠다.
눈은 초승달같고 어금니는 두 아름이나 되며 코는 어금니보다 긴데 그런 코끼리를 두고 코를 입부리로 아는 사람도 있고 혹은 다리가 다섯이라는 이도 있나하면 코끼리 눈이 쥐눈 같다고도 한다.
이렇게 저마다 달리 보는 것은 대개 코끼리를 볼때 코와 어금니에만 정신이 빠져버린 때문이다'.
직접 본 사람도 글 묘사가 이럴 정도면 안본 사람들이 상상하는 코끼리는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되기가 십상이다.
요즘 북한의 핵 논란과 함께 전쟁 얘기가 부쩍 빈번해지는걸 보면서 전세계가 북한이란 조그만 폐쇄국가 하나를 놓고 마치 코끼리 만지듯 하는 것 같아 연암의 '상기'를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궁금증은 대충 세가지다.
과연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전쟁은 할 것인가 전쟁을 한다면 미국 일본만 칠 것인가 남한도 칠 것인가.
세가지 의문 중 아직 어느 누구도 명확한 정답은 못내놓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관이라는 미 CIA 국장조차도 북한이 핵탄두를 '갖고 있다'는 표현대신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다며 추정 수준의 답안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
초승달같은 눈에 나귀 꼬리 달린 황소 몸통같다는 표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한 국민들의 북한 진단 역시 계층마다 제각각이다.
북한에 대해 조금씩 인식을 달리하는 계층을 세대별로 나눈다면 3가지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
6·25전쟁을 직접 겪으며 북한 공산정권의 실체를 경험한 세대는 대부분 북핵 보유 반대와 미군 철수·반미를 걱정하는 쪽이다.
6·25전쟁은 안겪었으나 반공교육과 교련 군사훈련을 받은 다음세대는 민족 자긍심을 들어 남북 어느 쪽이든 핵보유는 긍정적이되 반미·철군이나 전쟁은 걱정하는 편이다.
그리고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고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찌르자'는 6·25노래 같은 반공이념 안배우며 자란 더 아랫세대는 북한이 전쟁을 해도 남한은 안칠거라는 낭만적인 얘기까지 한다.
또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여·야와 정부는 그들대로 대북문제 인식과 '북한 바라보기'가 저마다 각각이다.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북핵보유는 추정일 뿐이라고 답변하고 여·야는 대북송금 특검수사를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엇갈린 진단을 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본심과 실체는 정확히 모른 채 세대간,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간에 서로서로 엇갈린 어림짐작만 해대면서 핵이 있느니 없느니, 남한은 안칠거라는 둥 코끼리 만지듯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안되면 병법대로 백전백패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계층마다 집단마다 갈라진 대북인식을 다양한 여론인양 버려둘 것이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든 정확한 현실 파악을 토대로 국민전체의 대북인식 통합을 통한 대응과 민족평화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다리가 넷인지 다섯인지 코인지 입부리인지부터 가려내고 그 다음 핵을 생각하고 철군과 반미 논쟁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허튼 추측이나 감성적 인식은 자칫 민족의 불행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지도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진중하고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지금 대북관련 말들이 너무 왔다갔다 한다.
우리쪽은 그렇다치고 '악의 축' 들과의 전쟁에 너무 집착하는 듯한 부시 대통령에게 부처님의 코끼리(북한·이라크) 다루는 법을 소개해 드리는 것도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제바탈다'란 자가 코끼리 사육사를 시켜 거칠고 흉포한 코끼리를 일부러 부처님 계신 쪽으로 내몰도록 했는데 성난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 막 다다랐을때 손으로 쓰다듬자 조용히 멈췄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이를 두고 '사람들은 코끼리를 제어할때 갈퀴나 회초리를 사용하지만 부처님은 갈퀴나 지팡이를 잡지 않고서도 부드러운 손만으로 코끼리를 제어하셨다'고 기록했다.
핵미사일·항공모함같은 갈고리 회초리보다 평화와 사랑과 인(仁)의 힘을 깨우치는 좋은 동양식 평화방책이긴 한데 부시가 부처가 아니니 쉬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부시와 김정일 위원장에게 토마스 모어의 반전 충고 한마디만 전하자.
'전쟁이 끝나고 이윽고 평화가 왔다.
허나 국민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재건을 위한 세금, 과부, 의족(義足), 그리고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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