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승강장, 스프링클러도 없어

대구지하철 방화 대참사에는 낡고 부족한 소방장비,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전기설비, 형식적인 소방훈련 등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낡거나 부족한 소방장비

불이 난 전동차에는 소화기가 열차 1량 당 2개씩 뿐이었다.

소방법의 기준은 맞췄으나 순식간에 번지는 불에는 무용지물. 승강장에는 50m마다 소화전이 있고 역 구내에는 열·연기 감지기 등이 설치돼 있었으나 마찬가지였다.

소방시설 기술기준 규칙에 따라 전기설비가 있는 곳은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승강장에는 스프링클러마저 없었다.

이때문에 소방관들은 지하 3층 승강장으로 진입하려 해도 뜨거운 열기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다고 했다.

연기를 제어하는 배연설비도 중앙로역에 13대 설치돼 있으나 총 용량은 시간당 70만㎥에 불과해 효능을 보이지 못했다.

목격자들은 발생 가스량이 워낙 많아 배연설비를 통해 환풍구 쪽으로 유독가스가 빠져 나가지 못하고 계단쪽으로 몰려 승객 피신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사고 발생 후 유독가스를 빼내기 위해 집연기를 동원했으나 지하까지 선이 닿지 않는 일도 발생했다.

이때문에 결국 화재 발생 5시간이나 지난 오후 2시40분에야 배연차를 끌고와 연기 제거 작업을 벌였다.

승객들은 이미 그 이전에 희생자가 돼 있었다.

지하 출구마다 설치돼 있는 가로 50cm, 세로 15cm 크기의 비상등 역시 가득 찬 유독가스에는 효력이 없었다.

소방관 각자가 의무적으로 착용토록 돼 있는 공기호흡기도 제 역할을 못했다.

이는 화재 때 30분밖에 견딜 수 없어 충전기 및 예비호흡기 준비가 필수지만 소방본부엔 그같은 장비가 태부족했던 것. 그 결과 한차례 현장을 다녀온 구조대원들은 곧바로 현장에 재투입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이런 문제는 50사단, 501여단, 3262공군부대, 미군 등으로부터 장비 및 인력을 협조받고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

◇인명피해 키운 전기시설

전기시설이 화재로 소실될 경우와 관련한 대비도 전혀 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당시 지하 2층 대합실까지는 전기가 공급되고 있었지만 사고현장인 지하 3층의 승강장 쪽 배선 등은 타버려 전기 공급이 중단됐고, 그때문에 장시간 구조작업이 지연되는 차질이 빚어졌다.

오후 3시쯤 대합실 쪽에서 전기선을 끌어와 승강장에 전기를 공급하고서야 본격적인 구조작업에 나설 수 있었을 정도였다.

소방 전문가들은 이번 지하철 화재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전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화재 현장에 출동한 대구 서부소방서 임동권 진압대장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선 소방관들도 극도의 두려움에 빠진다"며 "승객들이 승강장 주변의 옥내 소화전만 발견할 수 있었더라도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우 전기시설을 소방점검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화재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며, 미국·일본 등 안전 선진국 같이 전기시설을 소방의 범주에 넣어 통합 관리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허술한 소방훈련

지하철의 화재 대비 훈련도 지금껏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법이 지하철역에서의 소방훈련을 매년 1회씩 실시토록 한데다 각 소방서의 훈련장소도 매년 1개 역을 돌아가며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대구지하철공사가 월 1회 직원 대상 소방교육을 하고 있으나 소화기 사용법 등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 뿐 체계적인 화재 대비 훈련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관계자가 말했다.

지하철공사가 필요에 따라 실시하는 훈련도 승객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차원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만 진행됐으며, 화재보다는 열차 탈선 등 때의 비상 복구 위주로 전개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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