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너 죽고 나 살자'(?)

옛날 중국에 백성을 끔찍이 사랑하는 왕존(王尊)이란 태수가 있었다.

그가 동군(東郡)에 있을 때 홍수가 나서 큰 제방 김제(金堤)가 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도망쳤으나 그는 제방 위에 올라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제 몸으로 제방이 되겠사오니 비를 멎게 해주소서...'. 관리들마저 다 달아나고 오직 서기 한 사람만 옆에서 공포에 떨면서 울고 있었다.

한참 뒤 비가 멎고 하늘이 갰다.

제방도 더 허물어지지 않았다.

하늘이 그의 희생 정신에 감동, 더 이상 비를 내리지 않았다고 백성들은 두고두고 그를 칭송했다.

▲구재(救災)는 우리 유교사회에서도 목민관이 가장 우선해야 할 공무로 꼽혔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애민육조(愛民六條)'에서 '모든 백성에게 재액이 있을 때는 불에 타는 것을 구출하고, 물에 빠진 걸 건지기를 마치 자신이 불에 타고 물에 빠진 것처럼 해야 하며, 구재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과는 근심을 함께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하는 이번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는 한 사람의 '불특정다수'에 대한 보복심리가 불을 질렀다.

세상에 대한 저주가 엄청난 재앙을 불렀다.

하지만 그 책임은 윤리·도덕이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이 극심해지면서 위도 아래도, 개인도 집단도 두껍게 '이기(利己)'의 무장만 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닐는지.... 나누고 베푸는 마음이 식어버린 자리에 '너 죽고 나 살자'식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자리매김한 결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대참사의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공직자들의 총체적 '부실 근무'가 피해를 키운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격분하지 않을 수 없다.

화재 발생 뒤 경보음이 울려도 무시하는 등 초기 대응부터 승객 대피 유도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한 일이 없다.

분명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반대편 차선의 전동차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도 기관사가 승객 대피 조치는커녕 전원 열쇠를 뽑아 빠져나오고, 그 이후의 행적마저 미심쩍다는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인재(人災)와 관재(官災)가 부른 미증유의 참사로 대구는 지금 눈물의 바다이며, 이 가공할 악몽에서 언제 깨어날는지.... 사망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기만 한다니 기가 막히고, 아픔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행렬, 위로와 온정과 봉사의 물결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목민관들은 과연 무슨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지. 아직도 이기주의에 눈이 어둡지나 않은지.... 지금은 우리 모두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 모두'를 위해 마음의 촛불을 다시 밝혀야 할 때이지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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