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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Do I Know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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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I Know You? 주지하다시피 우리말로 '우리 아는 사이인가요?'쯤 되는 영어표현이다.

이 표현에는 '너 나 아느냐? -Do You Know Me?-'식으로 다그쳐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혹시 미리 알고 인사라도 했어야 하는데 실례가 되지는 않았는지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하면 제대로 된 대화가 이미 절반은 보장되는 게 아닐까?

눌언민행(訥言敏行)이라는 공자님말씀의 일면만을 높은 가치로 여기다 보니 사실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 표현력은 없어도 그만인 선택사양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을 쉽게 목격한다.

아니면 '말 잘하는 사람 믿지 말라'는 식의 근거 없는 경구를 가슴에 새기고 있는 까닭에서인지는 몰라도 심지어 '표현력이란 건 좀 모자라야 미덕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마저 많다.

(원제가 'You Can Negotiate Anything'인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은 그 내용에 있어서 '무엇이든' 협상할 수 있다는 약간의 오만함이 있고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인 생활을 상정하고 있어 전적으로 동감할 수는 없지만 표현력에 대한 위와 같은 의식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종종 '내 본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상대방이 혼자 너무 심하게 오해를 하고 화를 내서 당황하였다.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상대방의 잘못만인가? 우리들 대부분은 금쪽같은 휴일 오후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여 대통령과 검사의 토론을 보았으나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들 중 일부는 파병문제를 두고 유엔주재 대사를 지낸 원로와 국회의원 등이 100분간이나 토론장에서 떠드는 소음을 듣고는 화를 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의 토론에 있어서는 사방의 귀에서 출발하여 각각의 변들에 돌을 놓고 서서히 상대의 대응에 따라 자기가 안거할 터전을 넓혀 나가는 바둑의 도를 따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는 훈수쯤은 할 수 있겠으나 상대방의 주장뿐만 아니라 자기의 귀중한 생각까지도 이를 상대방의 이야기와 뒤섞이게 하여 소음으로 만들어 버린 두 번째의 토론에 대하여는 아직 하수인 나로서는 할 수 있는 훈수조차 없다.

어느 토론이든 간에 토론을 하자고 모인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토론에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하여야 하는 방안에 대하여 위험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 아닐까?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말뜻을 한번 되새겨봐야 할 요즘이다.

우선 "너 나 아냐?"고 다그치지 말고 "제가 몰라 뵈었나요?"로 말문을 트자. 2003년 4월, '신이 건설한 도시(Baghdad)'에 하루속히 총성과 비명 소리 대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를 기원하며….

강정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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