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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침묵과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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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소음이 가득한 세상이다.

저 멀리 중동에선 미국의 최첨단 무기들이 시커먼 연기 속에 굉음을 토하고 있고, 간간이 부모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그것과는 무관하게 오늘도 도심 도로는 경적과 엔진 소음으로 가득하다.

이기적인 군상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내뱉는 구호들 역시 소음에 다름 아니다.

약탈과 정복으로 가득 찬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전쟁을 아무 명분 없이 지속한다는 것은 우리 안의 인간성이 사라졌음을 깨닫게 해 맘이 아프다.

이렇듯 세상은 수많은 소리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것은 차라리 침묵만도 못한 쓰레기 소음이다.

시끄럽고 혼란스런 세상에 한 점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클래식 음악이 아닐까 한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좋지만 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좋아한다.

수많은 악기들이 하모니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웅장하고 화려한 연주가 아니라 외로이 첼로의 선율만이 우주를 떠다니는 유성처럼 현 위를 조용하게 끊어질 듯 이어진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작은 조각배처럼 은은하게, 때론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목소리처럼 감미롭다.

그러다가 래프팅을 즐기는 보트처럼 역동적으로 가슴속을 파고든다.

그러나 정작 그 곡을 듣고 있노라면 내마음은 강바닥에 자리를 잡고 가라앉은 조약돌처럼 물의 흐름을 온전히 감상하고 은빛 물비늘까지도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이 곡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형상으로 감동을 준다.

이른 숲속의 빈 공간을 채우는 새벽 안개처럼, 까만 밤하늘에 깨알 같은 별들처럼, 은은하게 내리비치는 달빛처럼, 무엇보다 욕망과 말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 한가닥 평화의 전령으로 다가온다.

첼로라는 악기 하나만으로 이토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인간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잠시만이라도 소음으로부터 탈출해 바흐의 첼로 모음곡에 마음을 실어보자. 이 봄이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한 계절이 될 것임을 믿는다.

김애규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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