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현대 사학계가 앞으로 더 심층적으로 밝혀져야 할 일은 첫째 우리 정도의 문화수준을 가진 민족사회가 왜 유럽 선진자본주의 열강도 아닌 같은 문화권 안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가 하는 점과, 둘째 그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왜 민족이 분단되었는가 하는 점이며, 셋째 어떻게 해야 다시 통일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이라 할 수 있다.
남의 지배를 받게 된 일과 분단된 일은 지난 일이니까 역사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해도 통일은 앞으로의 일인데 역사학이 다룰 문제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남의 지배를 받게 된 원인을 넓고 깊게 알지 못하면 분단된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고, 분단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통일방법을 옳게 찾을 수 없다.
그 때문에 통일문제도 역사학 측면에서도 다루어진다.
6·15 공동선언 때 남북을 통해 유일한 역사학자로서 그 현장에 참가한 후 국내와 미국·일본 등지로 다니면서 통일문제 강연을 많이 했다.
강연 끝에는 열띤 질문들이 나오게 마련인 데, 많이 받는 질문은 언제쯤 통일이 되겠는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된 민족사회 중 베트남과 독일은 지난 세기 안에 통일했는데 우리는 세기를 넘기고도 아직 안 되었으니 언제쯤 통일될까 가장 큰 관심사로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통일이 언제쯤 되겠는가보다 어떤 통일을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가 먼저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0세기 안에 통일된 베트남은 전쟁으로 통일했고 독일은 흡수방법으로 했다.
21세기의 통일이 될 수밖에 없게 된 우리의 경우 남북 당국이 모두 전쟁통일은 말할 것 없고 흡수통일도 안 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름 붙인 '협상통일'을 할 수밖에 없겠는데, 6·15 공동선언으로 협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쟁과 흡수가 아닌 협상 방법으로 어떤 통일을 할 것인가다.
지금 남쪽에서는 전쟁통일이나 흡수통일은 않겠다고 하면서도 대체로 1국 1체제가 되어야 통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쟁이나 흡수 방법이 아니면서 1국 1체제 통일을 하려면 긴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1국 2체제 통일안이 남쪽 사직당국이 말하는 적화통일론인가 아니면 체제유지 통일론인가 하는 문제가 있지만, 어떻든 이제부터는 우리의 관심을 언제쯤 통일될까 하는 쪽에서 어떤 통일을 할 것인가 쪽으로 돌리는 것이 통일문제를 풀어 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하겠다.
남북이 모두 베트남식 전쟁통일과 독일식 흡수통일은 안 하겠다 한다면, 우리 식 통일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 갈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어야지, 언제쯤 될 것인가에 더 관심 두는 것은 문제를 풀어 가는 순서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통일과 흡수통일을 부인하는 한반도의 남북당국은 지금부터라도 우리 식 통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함께 진지하게 연구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식 통일방식을 찾아내고 또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철도를 연결하고 육로관광 길을 열고 개성공단을 조성하는 일이 곧 통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통일에 앞서서 전쟁위험을 없애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정일 뿐이다.
그 일을 하는 한편 두개로 되어 있는 나라를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법으로 하나가 되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논의할 때, 그것이야말로 통일의 옳은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평화정착 과정과 통일방법 논의과정이 함께 이루어질 때 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게 된다.
통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언제쯤'에서 '어떻게'로 바꾸는 일이 요긴하다.
그리고 통일방법 논의의 활성화에 장애되는 모든 요인을 없애는 일이 또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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