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또 속은 어이하여 비었는가/ 저리하고도 사계절에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고산 윤선도가 오우가에서 노래한 것처럼 담양군 금성면 봉서리 대나무골 테마공원의 대나무도 하나 같이 곧고 하늘로 쭉쭉 뻗었다.
대도시 주택가의 점술가 집 대문 근처에 있는 버쩍 마른 대나무나 야산에 군락을 이룬 나지막한 키의 대나무와는 전혀 다르다.
굵기가 작은 것이 어른 손목만하고 큰 것은 씨름 선수 허벅지만하다.
높이는 약 15~20m. 이런 것이 밀림처럼 빽빽이 서 있어 작은 산짐승도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없을 정도다.
부채살처럼 펼쳐진 총 3만여평의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사진기자로 활동하다 지난 96년 정년퇴직한 신복진(64)씨가 현직에 있을 때부터 틈틈이 가꾼 곳.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작은 약수터가 보인다.
땅 속에서 실타래처럼 엉클어져 있는 대나무 줄기와 뿌리 사이를 흐르던 물이 대나무관을 통해 바깥 세상으로 분출되고 있다.
한 모금 들이키니 도시의 물과 공기에 오염된 오장육부가 깨끗이 씻기고 머리까지 맑아지는 듯하다.
은은한 죽향은 입 안에서 한참을 머문다.
안쪽으로 몇 걸음 더 옮기니 울창한 대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다.
이곳에 들어가면 하루하루 열기가 더해져 조금은 부담스럽던 햇살을 곧 그리워하게 된다.
머리를 풀어 해친 처녀귀신처럼 고공에서 가지를 벌리고 잎을 단 대나무가 햇빛을 가린 데다 푸른 대나무 둥치에서 찬 기운이 솟기 때문이다.
이곳 바람은 소리로 먼저 느껴진다.
'사악사악, 사사사삭'. 조심스레 걷는 새색시의 열두 폭 치마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마른 낙엽 밟을 때 나는 것 같은, 댓잎이 서로 몸을 부비는 소리가 먼저 귓전을 때리고 나서야 바람은 얼굴에 와 닿는다.
바람에는 죽향이 실려 있다.
대숲의 생명력은 봄이 깊어가는 요즘 왕성하다.
우후죽순이라더니 며칠 전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린 뒤부터 여기저기서 죽순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땅 속 줄기 마디에 생긴 곁눈이 지상으로 나온 것이 죽순. 죽순은 한 선비가 대숲에서 갓을 벗어놓고 잠시 볼일을 보고나니 갓이 없어졌더라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자라는 속도가 빠르다.
40여일이면 높이 15m 크기로 자란다.
죽순이 40여일 만에 된 대나무는 조직만 단단해질 뿐 더 이상 굵어지지도 자라지도 않고 7, 8년 동안 살다가 죽는다고 신씨는 설명한다.
죽순은 6월 중순까지 계속 돋는다.
이곳 대숲에서 자라는 것은 죽순만이 아니다.
댓잎에서 떨어지는 아침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야생 차나무가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름 모를 덩굴류과 식물은 매끈한 대나무 표면을 타고도 하늘로 잘도 오른다.
공기 중에서 가장 맑다는 대숲 공기를 들이키며 오솔길을 이리저리 걷다보면 각기 다른 형상을 한 장승이 늘어서 있는 '장승마당'이 나오고, 이 공원의 사계절 모습을 잘 보여주는 야외 사진전시장을 지나 산쪽으로 향하면 솔 향기가 코를 찌른다.
송림욕장이다.
작은 돌부리도 거의 없는 황톳길이어서 작은 안내판에 씌어진 대로 신발을 벗어드니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나들이객들이 앉아 쉴 수 있도록 군데군데 잔디밭도 조성돼 있고 평상도 만들어져 있다.
다시 이어지는 대숲 사잇길 끝에는 오래 전에 방영된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죽귀(죽竹鬼)'의 촬영에 이용됐던 오두막집이 음산한 모습으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담양읍에서 대나무골 테마공원 가는 길 또한 한폭의 수채화다.
이제 막 연둣빛 봄옷으로 갈아입은 수령 30여년의 메타세콰이어가 왕복 2차로 도로 양쪽에 늘어서 긴 터널을 이룬다.
한편 담양군 담양읍 일원에서는 대나무악기 소리제, 죽제품 경진대회, 죽검무술, 대나무 뗏목타기 등 대나무를 테마로 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대나무축제가 5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린다.
담양군은 행사를 위해 올해 읍소재지 5만여평의 야산에 죽녹원이라는 새 대나무 공원을 만들었다.
▶가는 길: 88고속도로 담양IC에서 빠져 순창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다 금성면 사무소 소재지를 거쳐 석현교 지나자마자 우회전, 농로를 따라 2.2㎞ 진행하면 대나무골 테마공원 입구가 나온다.
대구서 3시간30분 정도 소요. 입장료는 성인 2천원, 학생 1천500원, 어린이 1천원.
▶주변 가볼 만한 곳: 양산보(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인 소쇄원,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보관돼 있는 가사문학관, 추월산 국민관광단지와 가마골 청소년야영장·금성산성 등이 감싸고 있어 담양 제1의 관광지인 담양호가 차로 30분 내 거리에 있다.
▶먹을 거리: 소갈비에 붙어 있는 살을 떼어낸 후 채 치듯이 다져 동그랗게 만들어 굽는 '떡갈비'는 신식당(담양읍·061-382-9901·1인분 1만5천원)에서, 죽순을 회로 요리해 먹는 '죽순회'는 민속식당(담양읍·061-381-2515·한접시 1만원) 등에서 먹을 수 있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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