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모녀와 부자

"불쌍한 딸을 위해서도 내가 오래 살아야지 내가 세상을 뜨면 혼자서 어떻게 살겠어?".

칠순을 바라보는 전신마비 장애의 딸을 50년간 돌보면서 가난과 나이조차 잊고 살아온 백수(百壽)를 넘긴 어느 노모는 아직도 자신이 더 살아야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백수의 어머니에 칠순의 딸'이라고 그 자체도 드문 일이지만 이렇게 기막힌 사연까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결같은 반응이 "세상에 이런일이…"로 집약되고 있다.

4살때의 추락상(墜落傷)으로 평생을 자리에 누워지내는 그 딸에게 그 어머니는 수발도 힘겨운터에 글까지 가르쳐 시를 읊조릴 정도로 유식(有識)한 어른으로 만들어 놓은 그 모정(母情)을 주위에선 '위대하고 지고(至高)하다'는 말로 대변했다.

▲어머니의 글공부덕에 그 딸은 절박한 그들 모녀의 희망으로 '얄미운 행복/어느곳에 숨었는지/저 산 너머 숨었을까/저 바다건너 숨었을까/저마다 너를 찾아 헤매어도/얄미운 행복은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얄미운 행복'이란 제목의 시로 그 모정에 화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성장한 딸이 대견한 듯 그 노모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로 압축했다.

이들 모녀의 얘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처럼 이 각박한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꼭 꼬집어 뭐라고 형언할 순 없지만 충분히 우리들 가슴에 와닿는 많은걸 던져주고 있다.

▲5백억대 부동산을 가진 유명 변호사출신의 8순 아버지와 명문법대를 나와 미국유학에서 법학석사까지 딴 50대 아들간의 송사(訟事) 화제는 이 가난한 모정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왕년에 잘 나가던 시절에 사둔 땅으로 거부가 된 이 노변호사는 한달에 천만원이 넘는 약값을 감당못해 아들명의로 신탁해둔 땅을 처분하려 했으나 아들이 이에 불응하자 결국 소송을 냈고 아들도 이에 질세라 맞소송을 내면서 결국 부자지간이 '피고와 원고'라는 견원지간으로 돌변했다는 얘기다.

▲"내가 따로 상속해준 빌딩수입만도 한달에 수천만원이 되는데다 매년 1억원이 넘는 세금까지 내가 내줬는데 병원비 한푼 안준다"는게 아버지가 그 아들에 대한 원망. 이에 그 아들은 "그 땅은 내게 아버지가 증여한 것인만큼 소유권은 내게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변호사가 되고 자식에게 법학공부를 시킨게 오히려 큰 화근이 된 이 쟁송에선 그 어디에도 부정(父情)이나, 효(孝)는 찾아볼 수도 없고 오직 차가운 법리(法理)와 전의(戰意)만 번뜩인다.

장애의 딸이 노모에게 읊조린'얄미운 행복'이라는 싯귀를 이부자(父子)에게 들려주면 아마 그건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될 것 같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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