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감동이 실린 선물

내 호주머니에는 항상 손톱깎이가 들어 있다.

지금도 선희의 손톱을 다듬어 주면서 어눌한 말투로 그 어려운 가정 이야기를 눈물겹게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학기초 말쑥한 모습으로 전학 올 때만 해도 모두들 식당 아주머니의 막내딸 쯤으로 알았다.

하지만 선희의 부모는 선희가 어릴때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가셨고, 식당 아주머니 집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로 지내고 있었다.

작은 키에 체격이 약한 선희는 환절기엔 감기를 달고 다녔다.

푸석한 머리에 매일 같은 옷만 입고 코를 흘리며 다녀도,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인해 나는 선희 뒤에 숨어있는 슬픈 그림자를 읽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언제나 한발짝 뒤에 물러나 있는 선희의 유난히 긴 손톱이 마음에 걸려 그날부터 가지고 다니는 손톱깎이는 지금도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소중한 만능열쇠이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면 선희는 겨우 내가 깎아주는 손톱만큼 마음의 문을 열고 나에게로 들어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려는 가을날, 선희는 복도 창문으로 몇번이고 들여다보다가 사과빛 얼굴을 하고 슬그머니 다가와 사탕 한알을 오른손에 쥐어주고 인사도 없이 후닥닥 사라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땀으로 반쯤 녹아내린 사탕에서 나는 찝찔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선희의 마음을 오랫동안 녹여먹었다.

그날 이후 선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 "손버릇이 나빠 보내버렸습니다"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렇게 선희는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을까. 아이들이 하교한 빈 교실, 침묵을 깨는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한 다발의 장미 속에 묻혀 들어오는 아가씨는 분명 선희였다.

"저 선희예요. 산업체 학교에 입학해 첫 봉급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신세진 분들을 생각해보니 선생님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하며 내미는 향기 진한 꽃다발 하나와 큼직한 선물 꾸러미. 아직도 나는 그만한 감동이 실린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정해오(대구덕성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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