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잡초

요즈음 정가에 느닷없이 잡초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잡초에다 귀족초라는 말까지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서슬이 퍼렇던 시절 민초(民草)라는 말을 잡초처럼 살아온 우리네 삶과 같은 뜻으로 감동 깊게 받아들이고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던 많은 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야생초 편지'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작가 황대권은 잡초라는 말 대신에 야초(野草)라는 말을 쓴단다.

'잡초들은 우리들한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잡초들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야초가 쓸데없이 그 자리에 난 건 하나도 없다.

다 자연이, 그 땅이 필요해서 그 자리에 키우는 것이다'.

꼭 우리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게다가 농업의 상업주의화로 잡초가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고 한 그의 말은 오늘날 배금사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섬뜩해 진다.

사실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요즈음에서야 잡초의 삶에 동조를 느끼고 있다.

잡초 같은 삶을 살아오면서도 지척에 널려있는 그들의 존재에 관심조차 두지 않고 인간이라는 우월감에 젖어 살아온 지난날의 삶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잡초 같은 인생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 온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잡초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바보같은 잡초,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무시하고 거들떠보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는 잡초, 바람이 몰아치고 눈비가 쏟아져도 애써 피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잡초이고 싶은 것이다.

잡초 같은 인생을 살고픈 이 마음조차도 진정한 잡초의 삶에 어긋나는 부질없는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수필가·대구 중구청 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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