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러시아 여 무용수 숙소서 자다 숨져

기후가 다른 한국으로 와 열악한 여건에서 각종 약으로 건강을 지탱하던 러시아인 무용수가 목숨을 잃어 충격을 주고 있다.

13일 오전 7시40분쯤 대구 대명동 모 빌라에서 러시아인 무용수 W씨(23·여)가 쓰러진 것을 동료 무용수 A씨(20·여)가 발견했으나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A씨에 따르면 합숙소로 사용하는 이 빌라에서 잠자던 중 먼저 잠을 깬 W씨가 자신을 깨워 "약을 많이 먹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차갑다"고 호소한 뒤 구토를 하고 거품을 뿜으며 쓰러졌다는 것.

경찰은 외상이 전혀 없는 점과 방에서 감기·알레르기·위장 치료제 등 헝가리제 약병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약품을 과다하게 먹다가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W씨의 동료 N씨(24·여)는 경찰에서 "한국의 기후·풍토는 날씨가 추운 러시아와 달라 신체적으로 적응에 어려움이 많지만 대부분 무용수들이 돈을 저축하겠다는 집념으로 감기·알레르기·소화불량 등 치료약을 대량 복용하며 무대에 선다"며, "W씨도 약 힘으로 버티다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울먹였다.

W씨 유치업체인 ㅈ사 대표(31)는 "무용수들은 입국 때 아예 약을 뭉치로 싸들고 오고 떨어지면 본국에서 또 부쳐온다"면서, "특히 살이 찌는 것을 막으려 다이어트 약품을 과도하게 먹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W씨는 러시아인 무용수 국내 유치업체인 ㅈ사와 숙식 무료 제공에 월 53만원을 받기로 취업 계약을 맺고 지난 3월 입국, 경주의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지난 12일 대구로 옮겨 동료 16명과 방 3개에 나눠 합숙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에서는 러시아인 무용수 100여명이 10여개 나이트클럽에서 활동하며 20~30명씩 집단 생활을 하고 있으나 일부만 2년 정도 한 업소에 근속할 뿐 상당수는 3, 4개월만에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에는 이들을 유치하는 업체가 10여개 활동 중이라고 관계자가 전했다.

강병서기자 kb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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