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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클릭-고미술품 유통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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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미술품업자 두셋만 모이면 공주국립박물관 도난사건을 화제로 끄집어낸다.

"시민들의 시선이 따갑다" "골동품 경기가 바닥을 막 쳤는데 이런 일이…" 업계 종사자들의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굴, 모조품, 불법유통, 해외반출 등 업계의 어두운 측면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각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는 것이다.

한 고미술품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도 취득 및 유통 과정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몇배 나아졌다는 점은 장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대구에 고미술품 경매회사가 생기는 등 유통 및 매매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적지 않다.

업계 한쪽에서는 불.탈법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정화하려는 움직임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근절되지 않는 불.탈법=예전부터 대구는 '가짜의 천국', '도굴꾼 소굴'이란 좋지않은 소문을 들어왔다.

한때 전국 토기의 90%이상을 거래했던 곳인데도, 시중에 거래되던 고가의 '이형(異形)토기(신라.가야시대에 제작된 오리, 말 등의 동물모양 토기)' 상당수가 모조품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고서화 수집을 취미로 하는 한 컬렉터는 얼마전까지 가짜가 얼마나 횡행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현재 흥선대원군이 그린 난(蘭) 병풍이 대구에만 무려 30점이 넘습니다.

그중 진품은 몇점 안될 겁니다.

그래도 소장자들은 모두 진품이라 믿고 자기 벽장속에 꼭꼭 감춰두고 있으니 재미있을 수밖에요…".

아직도 가짜 토기를 업소 진열장에 버젓이 전시해놓거나 고가의 물건을 창고에 넣어놓고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업소도 꽤 있다.

최근들어 전국적으로 문화재 도굴꾼.절도범이 부쩍 설치고 있다.

한 고고학자는 "몇달전 5,6세기 삼국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칠곡 구암동 고분군에 구멍이 몇개 뚫려있는 것을 보고 아직도 도굴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북지역에만 297점의 유물, 고서적, 민속품이 도난당했다.

지난 9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도난당한 569점에 비교하면 지난해에만 고가, 빈집을 노린 문화재 범죄가 급증했음을 보여줬다.

문제는 불법취득된 문화재임에도 시간만 지나면 정상적으로 거래될 수 있다는 유통구조. 도굴꾼, 절도범의 장물이라고 하더라도, 중간업자 몇손을 거쳐 은밀하게 컬렉터의 창고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문화재지키기 시민모임 양도영(51.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사)박사는 "불법적인 유통과정을 없애지 않고서는 문화재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고미술업계의 관행을 볼때 공주국립박물관 도난사건은 예견된 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미술품업계는 구조조정중=업계에서는 90년대 중반이후 저질 업자들이 상당수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모조품이나 질낮은 물건을 들고다니면서 컬렉터를 유혹하던 업자들이 IMF를 계기로 자연스레 도태됐다는 것이다.

한 50대 컬렉터는 "몇년새 이상한 골동품을 들고 뻔질나게 찾아오던 업자들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1천만원짜리 고서화인데 돈이 급하니 먼저 100만원만 달라'는 업자들이 아직도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도 경매회사가 창립돼 오는 6월 12일 첫 경매를 앞두고 있다.

90년대 중반이후 서울에 3개의 고미술품 경매회사가 활동을 벌이는 등 투명한 유통과정과 공정 가격을 확보하려는 고미술품 업계의 시도가 돋보인다.

대호경매 박순호(63) 대표는 "요즘 우리 고미술품은 미국 크리스티 경매와 일본 도쿄의 경매시세를 보고 국내가격이 함께 정해질 정도로 국제적이 됐다"면서 "몇년후에는 가격시비와 진위논쟁이 고미술품업계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증문화의 확산이 해결책=고미술품업계의 어두운 부분을 걷어내려면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기증문화의 정착'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기증되는 문화재는 유통과정을 제대로 검증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구.경북의 문화재 기증 사례는 자주 찾아보기 어렵다.

이재환 원미갤러리 대표는 "부산 경기도 등 타지방 박물관에 가보면 유물 몇점에 불과하지만, 기증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어 무척 부러웠다"고 말했다.

대구 컬렉터들은 자신의 컬렉션을 사회에 기증하는걸 꺼리는 분위기다.

몇년전 한 70대가 수십년간 수집한 수백점의 고미술품을 아들의 부도로 대량처분한 것을 비롯, 컬렉터가 사망한 후에 자제들이 헐값에 팔아넘기는 사례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 유물을 기증받은 일부 박물관의 태도도 문제다.

기증받은 문화재를 창고에 넣어놓고 방치하거나 자료정리에 소홀한 곳도 적지 않다.

한 박물관 관계자는 "가치없는 유물 몇점을 기증해놓고 나중에 유족들이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박물관이 성의없이 기증문화재를 다루는 등 문제가 너무나 많다"면서 "기증문화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기증에 대한 사회적 규약이 있어야 한다고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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