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영어 시간에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읽힐 때마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다.
취업에 아무 쓸모가 없는 셰익스피어 나부랭이는 왜 영어 시간에 읽으라고 하는지 원망에 가득 찬 눈초리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교양을 지닌 대학생이라면 셰익스피어 쯤은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고 윽박지르며 '로미오와 줄리엣'중 한 장면을 원어로 읽게 한다.
물론 학생들은 어려워서 쩔쩔맬 수밖에. 그러나 그 다음 단계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의 실제 사랑에 기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수업시간에 보여주면 학생들은 즐거워한다.
그러나 영화평을 보고서로 제출하라고 하면 다시 불평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점으로 위협하는 선생에게 차마 반항하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약속한 날짜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경우 보고서 내용은 대개 천편일률적이다.
셰익스피어는 위대한 예술가이고, 이런 예술성 있는 영화는 처음이며, 교양영어 시간에 영화를 직접 감상할 기회를 준 교수님에게 감사 운운.
그런데 그러한 보고서를 무심코 넘기던 내 시선을 갑자기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그 보고서는 영화평을 과제로 내 준 선생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아울러 영화에 대해서도 혹평을 해 놓았다.
이름을 보니 평소 수업시간에도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이다.
나는 이 보고서를 뽑아들고 남의 생각과 다른 가장 독창적인 보고서라고 학생들 앞에서 칭찬했다.
수업이 끝난 후 그 녀석이 겸연쩍게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솔직히 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에게 칭찬 받기는 처음입니다.
셰익스피어, 생각보다는 재미있네요'. 그 말의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확인할 바 없지만 여하튼 녀석은 이후 수업시간에 누구보다도 잘 웃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이렇듯 칭찬은 교육현장에서 최고의 덕목임을 나는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체득하고 있건만 내 아이에게는 왜 맘대로 안될까. 중학생인 아들이 질문을 하면 "너는 어떻게 이것도 모르니? 컴퓨터 게임만 잘 하지. 쯧쯧"이라며 무턱대고 잔소리만 해댈 뿐이다.
상주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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