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뽕으로 파괴된 나의 삶을 되찾고 싶습니다.
쾌락과 행복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마약 전과자라 소개한 40대 초반 손모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최근 출소했다는 손씨가 히로뽕에 손을 댄 것은 20여년 전. 지금까지 10여 차례나 수감·출옥을 반복했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2 때까지 운동을 해 한때는 청소년 대표까지 지냈다는 그의 인생은 군에서 제대한 후 망가지기 시작했다.
발단은 대학 2학년 복학을 앞두고 친구 권유로 서울로 가 당시 유명하던 모 가수의 운전기사로 일한 것. "멀리 공연 갈 때면 며칠씩 잠을 못 자고 운전하느라 늘 피곤했습니다.
그때 친구가 '피로도를 줄일 수 있다'고 권해 별생각 없이 히로뽕을 복용하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단속조차 엄하지 않아 상습화된 것이지요".
그 후 대구에서 연예 관련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어 아파트를 여러 채 갖게 되기도 했으나 마약을 끊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15년 전부터 감옥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첫 사건은 자신으로부터 히로뽕을 받아 복용하던 후배가 붙잡히면서 '공급책'으로 검거된 일. 출옥·수감을 반복하는 동안 사업은 망했고 지금은 완전한 빈털터리가 됐다.
"7년 전 10년 연하의 아내가 암으로 죽었을 때도 '이젠 잔소리할 여자가 없어서 좋겠다'고 할 정도로 정신이 황폐했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지금 고아원에 살면서 아버지가 일본으로 돈벌러 간 줄 알고 있습니다".
손씨는 히로뽕의 유혹이 찾아올 경우 완전히 거부할 자신이 아직도 없어 세상에 자신의 상황을 공개함으로써 끊을 의지를 다지려고 매일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주위의 유혹도 여전하다고 했다.
후배들이 무시로 연락해 히로뽕을 공급할테니 팔아서 용돈으로 쓰라고 권한다는 것.
"히로뽕을 복용한 뒤에 엄습하는 불안감, 검거돼 수갑이 채워졌을 때의 차가운 느낌이 떠오르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이제는 새 삶을 살고 싶어요. 성실히 돈을 벌어 고아원에 있는 아들을 찾는 게 소원입니다".
그러면서 손씨는 만연한 마약의 뿌리를 사회가 총체적으로 나서서 뽑아달라고 했다.
성매매가 이뤄지는 대구시내 퇴폐 업소들에는 히로뽕이 독가스처럼 퍼져 나가며, 특히 한 여관 경우 손님의 절반이 히로뽕 투약자라는 소문이 있다고도 했다.
살 빼는데는 히로뽕 만한 것이 없다며 접근하는 유혹자들 때문에 여성들이 무방비로 노출되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은밀히 접근해 공짜로 히로뽕을 줘 중독시킨 뒤 '아기 분유값까지 뺏아 가는' 공급업자도 있다고 했다.
손씨는 그러면서 마약범 단속 고리도 원망했다.
수사 과정에서 공급책을 붙잡아 놓고도 "투약자를 제보하면 석방시켜 주겠다"고 협상하는 바람에 공급책들이 미리 '제보용 새 투약자'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 실적에 급급한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공급업자들은 더 이상 빨아 먹을 것이 없다 싶으면 수사기관에 제보해 잡혀가게 만든다고 했다.
손씨와의 인터뷰는 대구 인근 경북 모처에서 지난 18, 19일 이틀간 이뤄졌고 몇 차례의 보강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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