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준법, 투쟁수단된 나라

지난 70년대 노동현장도 지금처럼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보면 산업의 발달 과정에서 파생하는 노사관계의 명암(明暗)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유신체제이후의 억압상태는 노동자들의 욕구폭발을 예비해 주고 있었다는 게 설득력 있다.

72년 소위 '10월 유신(維新)'은 이전의 산업별 노조형태를 기업별 노조로 전환을 노동관계법에서 규정했었다.

이론상으로는 노조 힘이 빠지고 내부 결속이 느슨해진다는 단위 노조형태의 도입이다.

80년대는 노동운동과 관련해서 보면 큰 획을 긋는 시대다.

87년 6월 항쟁이후 근로자의 욕구가 일시에 폭발하고 그 당시까지 일방적인 우위를 보인 경영자의 위상이 서서히 위축되는 길을 걷는다.

이해 말 노동관계법이 전면 개정됐다.

쟁의나 쟁의행위가 좀처럼 어려운 압박성 노동쟁의 조정법 등이 종전에 비해 크게 완화된 것이다.

88년은 가히 파업이 전국을 휩쓴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 일변도의 경제논리에 분배 촉구가 맞서기 시작한다.

90년대는 양대 노총의 경쟁 개막이 핵심이다.

한국 노총에 맞서는 민주노총의 합법화는 노동운동의 일대 변화를 몰고 왔다.

금속노조를 축(軸)으로 한 민주노총의 영토 확장은 한국노총의 상대적 위축으로 이어진다.

지금 조합원수가 한국노총이 비교 우위에 있지만 연말이나 2004년이면 역전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런 예측은 양 노총의 젼략이나 사회분위기 변화등 지형지물(地形地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노동현장의 변화는 그렇다고 치고 70년대나 지금까지 부동의 위치를 점령하고 있는게 있다.

소위 '준법(遵法)'이 쟁의 행위의 수단이 되는 나라다.

법과 질서를 지킨다는 참으로 반듯한 생각이 집단행동의 무기로도 등장할 수 있는 이상한 국가다.

이것은 노동자를 질책할 사안이 절대 아니다.

'준법투쟁'은 특히 운수업체, 버스노조등이 임·단협을 하면서 거의 매년 내미는 카드다.

이를 뒤집어 보면 사용자의 불법조장이다.

배차시간 간격, 중도 회차금지 등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건국이후 지금까지 '준법'이 투쟁이라는 굴절된 의미로 사용될 정도로 노사관계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대표적인 상징이 아닌가 싶다.

기가 막히게도 준법투쟁의 매개물인 '불법성 버스'가 지금도 대구시내, 경북도 지역을 굴러 다닌다.

또 있다.

대기업 노조의 집단행동은 적법·불법할 것 없이 거의 패배(敗北)를 모른다.

공공 노조의 파업도 쉽게 이루어지는 나라다.

그런대로 높은 임금과 안정된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대형 노조 일부 근로자는 '파업'을 무기로 요구를 관철시킨다.

이것도 접근을 달리 해보면 노동정책 혜택의 편중이다.

노동정책은 국민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이익의 균등 배분은 여기도 해당된다.

노동정책이 목소리 크고 높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에게 초점을 맞춘듯한 결과는 중소기업등 영세업체 노동자들을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할 것은 뻔하다.

'대기업 노조 불패(不敗)'는 또 인건비 부담등을 감안한 대기업이 신규채용을 줄이는 한 요인도 될 수 있다.

전국철도 노조가 업무 복귀여부를 놓고 투표하던 날(30일), 유럽쪽의 독일 금속노조는 파업자진철회를 결정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54년이후 '노조불패'신화를 자랑하던 독일금속노조가 파업을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근본원인은 파업에 대한 대(對)국민 설득력 부족이다.

국민 여론이 금속노조의 파업철회쪽으로 모아졌다고 한다.

금속노조의 주장은 근로시간의 단축이었다.

동독지역 금속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을 앞으로 6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현행 38시간에서 서독지역 노동자와 같은 35시간으로 줄여 달라는 요구였지만 사용자측은 37시간으로 맞섰다.

동독과 서독 지역간에 노동생산성 격차 때문에 '동일 노동시간 동일 임금'이 적용되면 기업들이 임금이 싼 동부 유럽쪽으로 공장을 옮겨가 결국 실업자가 늘어 날 것이라는 게 기업주들의 반박 논리여서 새삼 우리의 처지를 뒤돌아 보게 한다.

노동생산성, 우리 노동현장에서도 절박한 문제다.

후진국 수준을 넘지 못하고 우리나라 세계 무역 교역량 순위와 단순 비교에서도 뒤처진다.

한국 국민 1명이 1시간 일해서 만드는 가치가 14.17달러(약 1만7천700원)로 노르웨이의 31.1%, 미국의 36.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37.76달러), 일본(28.37달러)은 물론이고 동유럽국가인 헝가리 19.25달러, 체코 16.87달러 보다 뒤처진다는 얘기다.

충격을 주는 얘기는 우리 나라에 대해 여성의 낮은 노동참여율, 외국인 직접 투자 부분 부진등을 들어 선진국과 GDP(국내 총 생산) 격차 좁히기는 지극히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 덫'을 좀체로 벗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할말을 잃는다.

'준법 투쟁'이 쟁의 행위 수단으로 이용되는 나라, 목소리만 큰 대형노조, 노동생산성 후진국 수준, 어디 한탄만 해야 하나.

최종진〈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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