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분들이 더 많은 매일신문 독자분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희망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도움을 받는 용기'를 배웠다고 했고, 앞으로는 자신도 남을 도와 받은 도움이 빛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생이 됐어요

주영이(가명, 작년 12월26일자 보도)는 이제 가명을 써서 소개해야 하게 됐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뼈가 굳어가는 병을 앓는 아버지, 초교 5년생 동생과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꿋꿋하게 살던 18살 소녀 가장이지요.

그 주영이가 지난 3월 여대생이 됐습니다.

가장 큰 걱정이던 대학 등록금 270만원은 성금으로 해결했습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친구들과 캠퍼스를 누비는 것이 즐겁다는 주영이는 대학에서 처음 방학을 맞았지만 요즘도 학기 중일 때보다 더 바쁘다고 합니다.

정오부터 밤10시까지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하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밤11시.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이 어디 수월키만 하겠습니까? 시간당 2천700원 받는 돈이 생활비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가 큽니다.

여전히 혈압이 높아 고생하는 아버지와 철없는 동생도 돌봐야 하는 힘겨운 생활. 그러나 주영이는 보도 이후 받은 후원금에서 돈 못잖게 소중한 것을 얻은 듯했습니다.

"정말 어려울 땐 남한테 도와 달랄 수 있는 것도 용기인 것 같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이 돼 사회에다 꼭 은혜 갚겠습니다". 지난 6개월 사이 주영이의 생각도 훌쩍 큰 것 같았습니다.

◇행복실은 휠체어

모두 지체장애 1급인 박문균(62) 문봉순(50)씨 부부(5월15일자 보도)는 많은 독자들의 도움으로 또한번 어려움을 뛰어넘은 듯했습니다.

위암 선고로 절망에 빠졌으나 남편은 모진 병마저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여진 소중한 성금으로 산 전동휠체어는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마차였습니다.

"식사 조절도 잘하고 건강도 꽤 좋아졌습니다.

곧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

박씨는 요즘 아내가 꽃파는 노점을 하던 칠성시장으로 매일 운동 겸 산책을 나간다고 합니다.

수술 후 세워두기만 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오토바이도 운전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전동휠체어가 생긴 후 아내는 더 바빠졌습니다.

집 근처 밭둑까지 휠체어를 몰고 나가 작동법을 익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해요. 평생 칠성시장밖에 몰랐다가 이젠 이 골목 저 골목 가고 싶은데 다 가 봅니다.

칠성시장까지 2시간이나 걸려 휠체어로 다녀오기도 했지요". 시장에서는 도움 준 동료 노점상, '오이 아줌마', '멸치 아줌마'에게 더듬더듬 감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전에 만들던 꽃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루 2~4개 만들어 작은 것은 5천원, 큰 것은 1만3천원에 팔 수 있다는 겁니다.

문씨는 도움 준 이웃들에게 그 꽃을 꼭 선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휠체어 앉기가 편해졌어요

지체장애 1급 준호(13)는 이제 휠체어에서 미끄러져 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몸이 뻗치거나 고개를 휘젓지도 않는다고요. 몸통 고정틀인 '이너'를 휠체어에 설비한 덕분입니다.

이 이너는 대구.경북 소아과개원의 협의회(5월8일자 보도)가 지난 5월 준호가 사는 고령 성요셉재활원에 선물한 것입니다.

모두 7대. 이너는 준호를 비롯한 중증 장애인 7명의 삶을 바꿔놨습니다.

김혜영(25.여.지체장애1급)씨는 누워서만 지낼 때 축 처져보이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답니다.

이너와 함께 설치된 보드가 식탁이 된 덕분이라고요. 누워서 밥을 먹다 목에 걸려 고생하던 일도 없어졌다고 합니다.

고개를 가눌 수 없어 고역이던 수업시간도, 누워서 밥을 먹어야 했던 식사시간도, 재활교사 선생님들을 힘들게 했던 외출시간도 이젠 기다려진답니다.

조민아 물리치료사는 "그 전엔 10분도 못 앉아 있던 아이들이 긴 수업시간에도 잘 집중한다"며 선물해 주신 의사선생님들에게 거듭 감사해 했습니다.

재활교사 안혜령 선생은 이너를 사용한 후 아이들의 장난이 더 능숙해졌다는 말로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아픔을 딛고…

지난 4월초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10살 어린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난 동춘이(3월27일자 보도)의 어머니(49.두류동)와 누나들은 석달을 지내면서 이제 막둥이를 영영 떠나 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울산 바닷가를 찾아 마음을 달랬고 누나들은 예배며 직장생활로 아픔을 이긴다고요. 하지만 엄마는 꿈에서라도 아들이 보고 싶지만 꿈조차 안꿔진다고 했습니다.

화재로 비닐하우스 집마저 잃어 버렸던 승미네(6월5일자 보도)는 전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아픈 몸을 끌고 건물 청소일을 나가고, 아빠는 일용직으로 공사장을 찾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엔 손을 여덟바늘이나 꿰매야 할 만큼 다치기도 했으나 붕대를 감고 또 일터로 나갔답니다.

곧 이웃들이 보내 준 성금으로 보증금 1천만원, 월세 30만원짜리 달세방을 구할 예정이라고요. "이웃들로부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젠 우리 식구 스스로 헤쳐 나갈 겁니다". 승미네는 집을 잃었지만 사랑을 대신 얻은 것 같았습니다.

뇌종양에 걸린 경섭이(6월5일자 보도)는 여전히 입원 중이지만 주위 사람을 알아볼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성금들은 막막하던 수술비 360만원을 해결하고도 남아 앞으로 몇년이나 걸릴지 모를 치료에 요긴하게 쓸 것이라고 엄마는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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