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깃발을 휘날리며 만선의 꿈을 안고 참여정부가 망망대해로 출범한 지 반년이 가까워온다.
뭍의 식구들은 '국민참여호'에 승선한 선장과 선원들이 튼튼한 몸으로 어족이 풍부한 어장에 빨리 도착하여 열심히 고기잡이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배가 때아닌 격랑에 출렁이는 모습이다.
선장의 나침반은 정확한지, 선원들은 능숙하게 배를 젓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보다는 격랑을 풍랑 탓으로만 돌려, 배질은 하지 않고 토론만 하는 듯한 모습은 우리에게 걱정을 안겨준다.
뭍에 있는 식구들도 생활의 터전인 경제가 흔들리고 사회까지 이익다툼으로 혼란스러워 설상가상이다.
국민이 믿고 기대는 지도층 인사까지 침체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혼란한 사회를 가다듬어 정리할 생각은 접어둔 채 저속한 막말로 서로 치고받기만 일 삼으니 힘없는 국민들은 한숨만 쉴 뿐이다.
제발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을 삼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들이 지도층 인사의 언행에 관심을 쏟고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말과 행동 속에 이 사회를 이끌고 갈 이상과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선악우현(賢愚善惡)이 나라의 흥망과 성쇠를 좌우한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도자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들의 인격에 선악적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사회의 운명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까닭에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모범이 되는 말과 행위를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사회적 의무이기도 하다.
요즈음은 나이가 많든 적든, 모임이 작든 크든 대화하는 그 자리에는 깜짝 놀랄 막말들이 아무런 여과장치도 갖추지 않은 채 서슴없이 오간다.
지도자의 말과 행동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자기 성질대로 안 될 때,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면 너나할것없이 '깽판친다', '못해먹겠다', '등신', '조삼모사', '인정하지 않겠다'는 등의 말을 스스럼없이 하곤한다.
이제는 '개떡'에서 '똥개'까지 등장했다.
참으로 슬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어떤 학자는 어느 지도자의 화법을 "단순한 실수나 무식, 생각의 모자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효과'를 노린 의도적 수단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정치적 수단이라면 상책이 아닌 최하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언어도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동양에서는 서양과 달리 말을 적게 하라는 사조가 이어져 왔다.
言이라는 글자 속에 '허물'이라는 뜻도 담겨져 있고, 동양의 성인(聖人)들도 하나같이 言을 경계한 것을 보면 말로써 생길 수 있는 과실을 막고자 함일 것이다.
공자의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저 사시(四時)가 돌아가고 만물을 기르고 있을 뿐이지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라는 언명은 자연과 같이 이치대로 행하면 말하지 않아도 무방함을 일깨워 준다.<
노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知者는 不言하고 言者는 不知'라 하고, '多言해서 자주 궁한 것이 守中함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아는 사람은 말이 없고 말하는 사람은 아는 게 없다'는 것은 지킬 수 없는 많은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믿음을 지켜 인간관계에 신뢰를 쌓기 위함일 것이다.
지금은 백 마디의 말보다 한 가지의 실천이 더 중요한 때인지라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설사 개인의 몸에 밴 언어습관이라 하더라도, 그가 공인이 된 후엔 말을 삼가야 한다.
비록 집안에서라도 말이다
안에서 새는 쪽박이 밖에서 성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빠르게 변하고 복잡한 시대에 不言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사회의 불치병인 '불신'을 치료할 수 있는 명약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정치지도자들도 이제는 말할 때 행위를 돌아보고, 행위를 할 때에는 한 말을 돌아보아 신뢰사회 구축에 앞장서기를 기대해본다.
지금 이 나라는 '대안 없는 위기상황'에 처해있다고 석학들은 진단하고 있다.
6·25전쟁 직전과 4·19 이후의 상황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하니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대안의 불을 보듯이, 앉아서 지신정결만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식견과 국민을 저버리지 않는 신의와 정열에 불타는 신념을 지닌 지도자들은 모두 구국의 대의 앞에 모여 '국민참여호'의 길에 횃불을 밝혀 주길 기대한다.
이제 말과 기교의 정치를 청산하고 언행일치로 솔선궁행(率先躬行)하는 正道와 大同의 세계로 나아갈 때이기 때문이다.
김복규(계명대 교수 한국정지학회장)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