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식(73)씨는 붓글씨로 직접 써서 족보를 만드는, 대구에서 마지막 남은 족보 제작자다.
'인간 옥편'으로 불리는 그는 서문시장 부근 서성로 교회 뒤편에 자리잡은 3, 4평 남짓한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39년간 족보 만드는 일로 살아왔다.
그의 옆에는 먹과 벼루가 떠나지 않는다.
그가 처음 족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교직을 그만두고 친구 형님댁에서 거울에 글자 쓰는 일을 하고부터다.
그런 그에게 족보 쓰는 일을 하지 않겠냐고 친구 형님이 권했던 것. 유림들 앞에서 글자 딱 3자를 써보이고 나니 족보를 만드는 일을 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경주김씨 파보(派譜)를 처음으로 시작한 그의 족보 만들기 인생은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족보는 원래 한 세대(30년)에 한 번 만드는 것이 기본. 그러나 요즘은 인구가 늘고 사람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15년에 한번 꼴로 족보를 만드는 이들이 많다.
족보 만드는 일거리는 점점 늘어가지만 김씨의 일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컴퓨터의 보급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솜씨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알음알음으로 그를 찾는다.
"한자는 아주 복잡한 글자지. 점 하나 때문에 전혀 다른 글자가 되기도 하지. 한문에 조예가 없으면 족보를 만들면서 틀리기가 십상이야. 그래서 요즘 컴퓨터로 만드는 족보에는 오자가 많지".
그는 옥편을 찾아 확인을 해 가면서 화선지에 한 글자씩 정성스레 족보를 써내려 갔다.
이렇게 족보를 만들다 보면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은 그리 많질 않다.
글자가 많고 적음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하루 종일 써봐야 5~10장 내외. 다작을 하질 못하니 돈벌이도 그리 시원찮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쓴 글자를 늘어놓는다면 지구를 한바퀴 돌 수 있을 거라고 자랑했다.
가끔은 족보에서 자신의 조상 이름을 찾지 못해 족보 꾸러미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족보에는 본명을 쓰지 않고 문중의 항렬을 따라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 이런 경우는 자식들이 후에 조부나 부친의 이름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지. 한번은 향교 자료에서부터 그 무덤에 묘비까지 찾아다니며 조상의 이름을 찾아준 경우도 있어".
예전에 대구에서는 그와 함께 일을 하던 사람이 10여명 정도가 있었지만 이제는 혼자만 남았다.
문하생도 없어 계승자가 없다는 점이 그로서는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젊었을 때는 2㎜ 정도의 아주 작은 글씨도 붓으로 썼는데 이젠 힘들어. 작은 글씨를 쓰려면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야 하거든. 그래도 죽을 때까지는 족보 만드는 일을 해야지".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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