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앞산을 올라 비슬산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청룡산을 택하는 초행길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드물잖게 탄성이 터져 나온다.
시가지 쪽으로 아파트들이 즐비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대도시 속 아담한 농촌마을 때문. 마을 뒤로는 다랑논들이 그림같이 퍼져 있고, 마을 앞으로는 시원한 호수가 펼쳐져 있다.
대도시 속의 이 전원마을은 '수밭마을'. '달서구 향토문화'라는 책은 "박씨 선비가 약 490년 전 마을을 개척할 때 숲이 울창해 '추전'(萩田)이라 붙인 이름이 현재는 '수밭'으로 변했다"고 적고 있다.
추전은 싸리밭이라는 의미.
등산객들의 말대로 보훈병원 옆길을 통해 도원지를 끼고 월광수변공원을 거쳐 들어가면 마을 입구에서부터 토종닭.유황오리 음식을 파는 식당 20여개가 즐비하다.
좁은 시멘트포장 진입로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
10대조 때부터 이 마을에서 살아 왔다는 김윤봉(52)씨는 "마을 앞으로 청룡산이 솟아 일대의 산세가 수려하고 풍광이 좋다"며 "마을에는 예부터 감.복숭아.느티나무가 무성했다"고 했다.
김씨는 영천 이씨 몇집이 살던 이 마을에 임진왜란 당시 고령 김씨와 밀양 박씨 두 집안이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커졌다고 했다.
김씨.박씨 사람들은 계곡 하류인 월배 즈음에서 떠내려 오는 복숭아꽃을 보고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다 이 마을터를 발견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는 것. 새 정착자들은 이곳 경치가 그야말로 무릉도원(武陵桃源) 같다 해서 '도원'이라 부르기도 해 현재 대곡지구 마을 이름이 도원동이 됐다고도 했다.
'원조할매묵집' 박숙자(70) 할머니는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에는 좋은 쌀밥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수밭마을로 딸을 시집보내겠다고 인근에서 탐을 냈다"며 "예로부터 여기는 물 좋고 땅이 기름져 좋은 쌀이 많이 난데 반해 아래 월배는 물난리가 잦아 수밭마을 사람들을 부러워했다"고 전했다.
김윤봉씨는 "예나 지금이나 마을 모습에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10여년 전 관련 규제가 바뀌면서 식당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그린벨트 취락에 대해 20가구당 1개씩 식당을 열 수 있도록 법이 바뀐 것. 규정은 그 후 더 완화돼 수밭마을 식당은 현재 25개나 되고 그 중 23개를 토박이들이 운영하고 있다.
현재 마을 규모는 88가구 249명이며, 식당업을 하지 않는 60여 가구는 야채 등 농사를 짓고 있다.
도시 속 농촌마을이라는 특성 때문에 마을사람 대부분이 50대 이상이고 100세인 배갑남 할머니가 최고령자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고라니.멧돼지 등 들짐승 피해가 큰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한 주민은 "임시로나마 들짐승을 잡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행정당국에 요청해 놨다"고 말했다.
그 외 마을 사람들에게는 수십년간 묶여 있는 그린벨트가 하루빨리 풀리고 마을 진입로를 확장하는 것이 꿈이다.
특히 주말이면 도원지 주위에 꾸며진 월광수변공원에 많은 시민들이 찾아 주차난까지 겹침으로써 한 대 밖에 없는 시내버스 회차마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달서구청 관계자는 그 어느 바람에 대해서도 명확히 잡힌 대책이 없다고 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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