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가족은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상묘에 벌초도 할겸 성묘를 간다.
경북 의성군 안평면 삼춘리.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다니다 객지로 나와 30여년을 전전하면서도 이맘때가 돼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는 것은 꼭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여겨진다.
산소를 돌아보고 고향마을에 들러봐도 반가운 마음보다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남는다.
동무들과 뛰어놀던 논두렁이며 뒷산 소나무와 개울의 물웅덩이는 그대로인데 고향마을은 피폐해져 빈집만 늘어가고 기력이 쇠한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내가 졸업한 하령초등학교가 있다.
넓디 넓었던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교실 유리창은 군데군데 깨져 있고 운동장 어귀에 남아 있는 교적비에는 분교로 격하됐다가 폐교된 서글픈 이력이 새겨져 있다.
아버지는 소학교 시절 육상선수였다.
그래서 운동회날 아버지와 손잡고 달리기를 하면 단연 내가 일등이었다.
아버지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하던 어린 나에게 우상이자 자랑이었고 아버지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할 때 가슴은 터질 듯 벅차올랐다.
이제 그 운동장에는 더 이상 운동회도 열리지 않고 잡풀만이 우거져 을씨년스런 곳으로 변해버렸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또 있다.
면사무소옆 공터에서 추곡수매를 마치고 나면 아버지는 중국집에 가서 거금 110원이나 하는 자장면을 사 주셨다.
자장면 한 그릇만 시켜 나에게 먹이고 아버지는 단무지를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속이 불편하다며 자장면을 나에게만 먹으라고 했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었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면사무소에서 한시간이나 걸리는 집까지 걸어갔고 아버지는 '나처럼 힘든 농사 짓지 말고 대처로 나가 공부하라'고 하셨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고, 이제 나는 다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 손을 잡고 그 길을 걷는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으로 이 길을 걸었을까 생각하면서.
그래서 해마다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면 아버지가 마시던 소주에 흠뻑 취해보고 싶어진다.
김재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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