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치과의사 김병연의 '사랑의 틀니 만들기'

대구의 치과의원 김병연(46) 원장과 종로라이온스클럽은 4년째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랑의 틀니 만들기' 봉사를 펼쳐오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병원 문턱 넘을 엄두도 못내는 이들에게 틀니는 귀하디 귀한 선물. 그래서 치아를 맞춰 주는 일은 삶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도 덤으로 선물하는 일이 되고 있다.

▨틀니가 가져다 준 행복

자동차 부품 가게를 하며 남부럽잖게 생활해 왔다는 김인철(가명.45.범물동)씨는 5년 전 피부암에 걸리면서 모든 걸 잃었다.

가게를 처분하고 아내가 파출부로 나서고서야 근근이 치료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지금 생계를 꾸려주는 것은 40여만원의 국가 지원금.

계속된 항암치료로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갔고, 항암치료 이후 치아가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더니 밥을 씹는 일조차 힘들게 됐다.

"건강을 회복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갈비를 요리해 줘도 구경만 해야 했지요. 멀쩡한 밥도 죽으로 쒀서 먹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런 김씨에게 행복을 되찾아 준 것은 김 원장과 그를 후원하는 종로라이온스클럽. 김씨는 작년 10월 이들이 펼치는 '사랑의 틀니 만들어 주기 봉사' 수혜자로 선정돼 부분틀니를 해 넣을 수 있었다.

200여만원에 달하는 기공비.수술비가 무상 지원된 것. "치아 없는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남은 반평생의 행복을 선물해 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건강을 되찾을 것입니다". 김씨는 감사해 어쩔 줄 몰라했다.

1985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박덕희(가명.55.여.지산동)씨는 그 후유증으로 지체장애와 언어장애를 얻어 20여년간을 고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박씨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사고 후 치아가 빠지기 시작한 것. 하지만 건설 일용공 남편과 생계를 위해 대학까지 포기한 아들에게 미안해 차마 틀니 하기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박씨도 작년 10월 '사랑의 틀니 만들어 주기' 봉사 대상으로 선정돼 귀한 선물을 받았다.

"한번 만난 적도 없는 저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베풀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생활에 용기가 새로 생겼습니다".

▨마음이 일을 이룹니다

"그런 치아 상태로 어떻게 식사를 했는지 의아해 해야 했던 환자가 한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이가 하나도 없었더라면 잇몸으로라도 밥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김 원장은 '사랑의 틀니 만들어 주기' 봉사를 처음 시작할 때 의료복지의 허술함을 통감했다고 말했다.

몸이 성찮으면서도 이까지 부실해 영양 섭취마저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것. 게다가 그들은 시술료가 없어 치과를 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 원장이 이런 사정을 깨닫게 된 것은 1999년이었다.

대구치과의사회가 벌인 저소득층 무료 진료 사업에 참가하면서 실상을 알게된 것. 하지만 당시의 무료진료에는 인력과 재원상 한계가 있어 틀니까지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듬해 스스로 길을 개척하려고 나섰고, 자신이 회원이던 종로라이온스클럽이 그 후원을 맡고 나섰다.

자비를 보태 첫해 이뤄낸 성과는 비인가시설인 '사랑의 집'(달성 가창) 생활자 등 5명에게 틀니를 선물한 것. 이어 2001년엔 7명, 2002년엔 13명으로 수혜자가 늘었다.

작년 한해 이 봉사에 투입된 돈만도 1천800여만원. 올해는 10명에게 6일부터 진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무료 진료 전국 확산

김 원장의 사랑의 틀니 만들어 주기 봉사는 매년 9, 10월 추석 앞뒤에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상자는 법정 영세민. 수혜자 선정은 이 일에 함께 나선 지산종합복지관이 맡는다.

복지관 김태우 팀장은 "국가의 완전한 보호 범위에 들지 못하는 '틈새 영세민'들이 무료 틀니 시술의 주 대상"이라며 "이 봉사는 의료인, 사회봉사단체, 복지관 등이 잘 연계해 만들어 낸 성공 사례"라고 자평했다.

"IMF사태 이후 자녀를 두고도 부양받지 못하는 홀몸노인들이 부쩍 는 것 같습니다.

틀니를 한 뒤 삶은 고구마나 감자를 들고 와 감사를 전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는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

김 원장은 틀니 봉사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이제 의료계 전반에서 진료 봉사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더 기뻐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경우 "1만5천여명의 저소득층을 위해 무료 치과 진료사업을 벌이겠다"며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약정서를 보내기도 했다는 것. 이에따라 대구치과의사회도 내년 7월까지 580여명을 무료 진료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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