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감정 이렇게 풀자(9)-종합

'호남민심은 지역감정 없애기 위해 영남후보 뽑고, 영남민심은 지역패권 지키기 위해 영남후보 뽑고…. 그래도 호남사람은 욕먹고 영남사람은 대접받고/경제중심지 전부 영남에 모아놓으니 돈 모이고 (중략) 경제단지 하나 없어 일자리 찾아 떠난 호남, 지지율 95%가 뭐냐고 욕하면서 지역감정 원조라고 덤터기 씌우고…. 그래도 호남사람은 욕먹고 영남사람은 대접받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랐던 한 전라도 사람의 글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없는 말이라고 묵살할 수도 없다.

지금껏 살아온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방식부터 가치관까지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이 편견으로 진화하고 타지역에 대한 맹목적인 냉소와 시기, 적대감으로 옮아가선 안된다.

영·호남간의 갈등은 이러한 악의적인 전철을 고스란히 밟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들 지역간 감정의 골은 정치권을 통해 부단히 확대·재생산됐음을 시리즈를 통해 이미 지적했다.

삼국시대 신라, 백제 이후 조선시대 경상, 전라로 뿌리내리기까지 지방색은 있었지만 지역갈등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지역갈등은 이번 시리즈를 계기로 취재했던 유럽 각국의 지역갈등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놀라운 것은 유럽 각국의 경우 민족, 문화, 언어, 종교가 다르지만 국가의 틀 속에서 갈등을 녹여내는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며, 무엇보다 이런 갈등이 정치권의 교묘한 편가르기를 통해 증폭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갈등의 양상이 우리와 가장 닮은 곳은 이탈리아. 천년 넘게 단일국가를 유지해 온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는 비교적 최근 반도내 통일을 이뤘다.

그러나 통일이 곧 국가내 지역간의 문화적·경제적 격차를 없애는 기회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한국이 동서간의 갈등이라면 이탈리아는 남북간의 갈등이다.

잘 사는 북부와 못 사는 남부는 언어나 민족·종교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헐뜯고 비난했다.

지역감정이 극심하던 시절 한국에선 '호남공화국'이니 '영남민국'이니 하는 말들이 떠돌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선 실제로 북부동맹이 밀라노를 중심으로 8개주를 묶어 '파다니아 공화국'을 선포하는 '정치적 사건'까지 벌어졌었다.

쉽게 말해 갈데까지 가 본 셈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자신들만 잘 살겠다고 '독립'을 선포한 것도 우스꽝스럽거니와 그처럼 정치 쇼까지 벌인 북부동맹이 기대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해 원내에 진출했지만 해 놓은 것이 없었기 때문. 북부동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다른 유럽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차이는 인정하되 편견은 거부한다.

물론 외국인이라고는 평생 구경도 해 본 일이 없는 시골 동네에서 반이민법 제정을 주장하는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기현상일 뿐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는 차별과 편견을 최소화하는데 기울어져 있다.

최근 국내에선 지역차별 또는 지역갈등의 해결책으로 혁신적인 지방분권을 주창하고 있다.

동국대 황태연(정치학) 교수는 지역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중앙집권제와 대통령제가 결합한 '초(超)중앙집권제'를 지적했다.

고려대 최장집(정치외교학) 교수 역시 지역감정의 주요 원인으로 "한국의 중앙집중화 문제를 정치적 권력뿐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의 자원들이 지리적, 공간적으로 집중되는 초집중화(hyper-centralization)"라고 분석한 바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인 한림대 성경륭(사회학) 교수는 지역갈등 해소방안으로 지방분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방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성 교수는 "중앙집권 국가에선 다수집단이 소수집단을 정치·경제적으로 억압하고 차별할 가능성이 높다"며 "연방주의에선 중앙정부의 권한과 자원이 축소되기 때문에 한 사회의 정치세력들이 중앙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사생결단식의 투쟁을 벌이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시리즈 취재를 위해 방문한 유럽 국가들은 어떤 정치체제를 택했던 간에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정하는 포용력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대한 자율을 보장함으로써 중앙정부 또는 다수 세력과 다투기보다는 상생하는 길을 찾고 있었다.

여기에는 소외된 또는 소외됐다고 여기는 세력이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지 않고, 다수 세력이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지 않는다는 두가지 중요한 전제가 바탕에 있다.

프랑스에서 만난 아드리앙 젤러 알자스 주지사는 "연방제이든 지방분권이든 권력을 고루 나눈 체제 아래 균형 발전이 가능하다"며 "특히 글로벌 경제시대에 국경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면서 지역끼리의 경쟁이 두드러지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지 못하는 지역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고립·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젤러 주지사는 또 "선거로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이를 지역간 불균형을 촉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그릇된 관행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베를린자유대 베르너 페니히 교수는 "한국의 지역감정은 엄밀히 지역간 갈등이 아니며, 특정 인물에 대한 좋고 나쁨이 확대된 면이 있다"며 "지역감정 해소에 조급증을 내서는 안되며, 구습에 젖은 정치인들이 퇴장하고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10년 또는 20년 뒤엔 인물론에서 비롯된 왜곡된 지역감정도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진단했다.

취재팀=서종철·김태형·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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