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즐거운 Edu-net-시 길라잡이

시뻘건 홍수가 이웃들의 삶의 터전을 할퀴고 간 현장을 TV화면으로 보면서 김광규의 라는 작품을 떠올려 봅니다.

'겨울까지 밀린 도급 공사 서둘러/하수도 배관 공사팀과/가스 배관 공사팀이/번갈아 동네 언덕길을/속속들이 파헤쳐 놓고/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사이/도로 포장 공사팀이/시멘트를 비벼서 후딱 덮어버렸다/그 번드르르한 포장도로/한여름 장마 때 벌떡 들고일어나/막혔던 산골짜기 물/폭포처럼 쏟아져내려/아랫동네 온통 물바다에 잠긴다/그리고 곧장 이웃돕기 모금이 시작된다'. 추진하는 일들에 대해 총체적인 통찰에 의한 조절 기능이 없을 때, 우리는 똑 같은 재난을 되풀이하여 당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이지요.

현대사회의 불행한 징후의 하나로, 사람들의 총체적 통찰 능력이 점점 쇠퇴해져 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산업자본주의의 발달로 직업이 세분화하면서 사람들은 아주 좁은 업무 영역에서 표준적인 절차만을 맹목적으로 되풀이하며 살아가도록 길들여지고 있으며, 그 후유증으로 모두가 특정 영역에 있어서는 전문가일 수 있지만 전체 상황을 통찰하는 데 있어서는 모두가 바보이거나 무식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골짜기가 더 깊이 패이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전개되는 현실 상황에 부대끼다 보면 비록 어느 한 분야에만 종사하더라도 전체적으로 통찰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가령 어린이 유괴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날 아침 조회 시간에 선생님은 "낯선 사람이 아무리 달콤한 말로 꾀어도 절대로 믿고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말해놓고, 이어지는 1교시 도덕 수업 시간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시는 총체적인 시선으로 빚은 우주들입니다.

따라서 시 읽기는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행위이며, 전체를 바라볼 줄 아는 시력 회복하기입니다.

다음은 윤석중의 시 입니다.

'이슬이/밤마다 내려와/풀밭에서/자고 갔습니다.

//이슬이/오늘은 해가 안 떠/늦잠이 들었지요//이슬이 깰까봐/바람은 조심조심 불고/새들은 소리 없이 날지요'. 이 시에서 이슬과 풀밭과 바람과 새들은, 우리 고장 사투리로 존재하며 따로따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총체적 통찰에 의한 시선에 따라 서로가 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조화로운 세상을 열어 보이고 있지요.

(김동국.아동문학가.문성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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