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만신창이 울진 산하...헬기로 본 현장

'뭉텅뭉텅 사라진 도로, 자갈로 뒤덮여 하천과 구분이 안되는 농경지, 연녹색 소나무림 사이로 붉은 띠를 드리우며 새로 생겨난 산골짜기…'.

15일 오후 산림청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울진의 산하는 수마가 할퀴고 간 자국의 연속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붓던 폭우도, 세차게 휘몰아치던 폭풍도 사라졌지만 이를 온 몸으로 고스란히 견디어낸 산하는 만신창이 그 자체였다.

울진군민체육관에서 이륙한 헬기가 시가지를 벗어나 왕피천 입구에 이르자 발 아래로 생채기가 난 울진의 모습이 커다랗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의 그랜드 캐넌으로 불리던 수려한 경관의 불영계곡은 그 명성을 뒤로 한 채 마치 도화지에 물감을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듯 온통 누르스름한 황톳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왕피천 너머 수곡들판에 수확을 앞둔 벼들은 범람한 수마와 사투를 벌이다 지친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논바닥에 아예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있었다.

피해 규모를 짐작케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조금 더 올라가자 제방이 유실되면서 하천의 모래와 자갈이 그대로 들이닥친 들녘엔 논과 하천의 경계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자원봉사자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흙더미 속에 묻힌 벼 이삭을 애써 찾아 조심스레 일으켜 세우고 있었지만, 풍년의 꿈을 폭풍우에 날려 버린 농부의 마음은 이미 새까맣게 타버리고 없었다.

헬기가 기수를 돌려 사흘째 고립된 마을에 생필품을 전하기 위해 서면 왕피천과 소광리로 향하자 얼룩말의 등허리 띠처럼 짙푸른 수목 사이로 산사태로 인해 옷을 벗어 던진 민둥산이 듬성듬성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일대는 전국 최고의 송이버섯 주산지 중 하나. 울진이 자랑하는 '자연의 향' 송이 채취는 당분간 물건너 간 듯해 보였다.

계곡을 끼고 난 길을 따라 나르던 헬기가 순간 움찔하는 듯했다.

2차로의 마을 진입로 포장도로가 움푹움푹 패고 또 상당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군청의 수해복구대책반이 투입시킨 중장비들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응급복구에 나서고 있었지만, 발가벗겨진 자연 앞에선 왠지 애처롭기까지 했다.

마을로 접어들자 무너진 집 마당과 골목에는 산사태로 밀려든 토사와 경운기.정미기 등이 널부러져 있었고 브라운관이 깨진 TV와 찌그러진 밥솥 등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작년에 이어 또 다시 수해를 입은 마을은 연속된 비극의 현장 그 자체였다.

생수와 양초 등 생필품을 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에 들어온 마을은 붉게 물든 노을에 드리워져 더욱 황톳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사진:하늘에서 본 수해현장은 곳곳이 잘리고, 패이고, 끊어진 만신창이 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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