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두드러기

다섯살배기 딸아이는 자주 두드러기를 한다.

우유나 치즈 등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눈두덩이부터 울긋불긋하게 부풀어 올라 온몸에 두드러기가 번진다.

안타까운 마음에 안아주기도 하고 업어서 달래기도 하지만 칭얼대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떤 때는 두드러기로 흉해진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고는 스스로 놀라 울부짖는 아이를 볼 때면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 온다.

어린 아이이지만 예쁜 얼굴이 흉하게 변한 것은 두렵기 마찬가지이리라.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두드러기 때문에 잠을 설치고 학교도 빠지곤 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피를 속이지는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 하필이면 두드러기 체질이 딸아이에게 유전되다니….

지금은 아이에게 연고도 발라주고 약도 먹이고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아보지만, 어린 시절 두드러기가 온몸에 퍼지면 어머니는 삼베 이불에 어린 나를 눕히고 찬수건으로 쓸어주거나 부채를 부쳐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약국이라고는 10리 밖에 떨어진 면소재지의 우체국 맞은편 최 약국 한 곳밖에 없어서 약을 사러 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부모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다.

아버지는 두드러기가 퍼진 내 얼굴을 근심스럽게 살펴보면서 '방에 들어가서 자거라'고 했고, 어머니는 칭얼대는 나를 들쳐 업고 집 앞 개울가로 가서 할아버지가 우리집 염소를 물고가던 늑대를 쫓아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의 넓은 등에 귀를 대고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고 다음날이면 씻은 듯이 두드러기가 나아지곤 했다.

오늘도 나는 어린 딸아이를 업어 달래며 어린 시절의 두드러기를 생각한다.

이제 칠순을 넘긴 어머니에게 아들이 업히기에는 아들은 너무 커버렸고 어머니는 너무 늙어 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내 몸에 두드러기가 퍼져 오래오래 아프면서 어머니에게 업혀 그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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