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면

꿈을 꾸고 싶으면 책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

한때 나는 전원생활을 꿈꾸면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월든'이라는 책에 흠뻑 빠졌던 적이 있었다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말라는 자연주의자 소로우의 숲속 생활을 담아낸 그 책은 일기이자 인생철학이 담긴 고백록인 셈이다.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자신이 살 오두막을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소로우가 한없이 멋지게 보이던 무렵에 때마침 우리에게 밭 한 뙈기가 생겨났다.

산자락 밑에 자리한 그 밭을 책에서 만났던 숲 향기 물씬한 월든 호숫가로 여기며 참으로 뿌듯해하였다.

호미와 낫, 모종삽을 준비하고 씨앗을 사고 더러는 모종을 구해와 심어보니 흙을 만지는 일이 즐겁기만 하였다.

주중에 열심히 일한 다음 주말농장으로 향하면 시간도 마디게 지나가고 참으로 자유로워서 좋았다.

그 조그만 밭농사를 통해 우리가 사는 데는 그다지 많은 게 필요치 않다는 걸 알았고 인생을 더 정확하게 배워가는 것 같았고 소산물을 거두어 이웃들과 나눠먹는 재미는 그 어디에도 비길 데 없이 좋았다.

나는 거기에서 온갖 새소리를 통해 자연음을 들으며 땅속에 기어 다니는 미물들과도 친해져 위험할 땐 빨리 피신하도록 응원도 하였다.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이렇게 저렇게 밭과 친해진 지도 어언 3년째이다.

첫해는 가뭄 때문에 물을 길어와 일일이 뿌려주느라 힘들었고 이듬해는 월드컵 경기 보느라 한동안 발길을 끊었더니 잡초가 웃자라 쑥대밭처럼 되었다.

3년째인 올해는 뭔가 잘 될 것 같았는데 태풍 '매미'에 도랑물이 넘치고 둑이 터져 손바닥만큼 자랐던 무와 배추를 흔적도 없이 휩쓸고 가버렸으니….

고작 스무 평 남짓한 밭에서도 씁쓸함을 금치 못하는데 수재민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애타는 심정에 숙연해진다.

자연의 기이 현상이 해마다 늘어난다.

자연을 파괴한 우리 모두는 이제 앞으로 자연을 만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많이 지불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결국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삶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기에.

김경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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