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씨가 마르니 돈이 돌 턱이 있나요. 어민가계는 말할 것 없고 다방.술집 아가씨까지 떠나고 있어요".
오징어 성어기가 왔는데도 구룡포.후포.울릉도 등 동해안 항포구 일대는 적막강산이다.
구룡포 선착장 부근에서 만난 선원 김기호(48)씨는 "돈 구경한 지 오래됐다.
지갑이 비어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포항, 구룡포, 후포, 울릉 등 단위 수협에 따르면 이달 들어 오징어는 물론이고 가자미, 문어 등 모든 어종이 잡히지 않아 입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고기 왜 안 잡히나=오징어는 대표적 1년생 어종이다.
오징어는 보통 초겨울 남해 먼바다와 동중국해에서 산란해 동해와 서해로 갈라져 외해(外海)를 통해 북상하면서 성장한다.
이어 러시아 해역에서 한반도 연안을 타고 다시 남하한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달리 서해로 올라가는 양은 많았던 반면 동해로 올라오는 양은 줄었다.
최근 서해연안에서 '오징어 대풍'이라는 말이 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해수산연구소 허영희 연구사는 "산란기였던 지난해 겨울 저수온대 발달로 산란 실적이 좋지 않았고 발육상태(숙성도)도 떨어진 것이 올 가을 동해안 오징어 어획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낚이 어선 선장 김해석씨는 "요즘은 힘들게 조업해도 1회 출어경비 100만원조차 건지기 힘들다"고 했다
서해수산연구소 박종화 연구관은 "지난 7∼9월 초까지 계속된 여름철 냉수대 발달로 인해 오징어 어군이 남하하지 않고 있다"며 "다음달 초순이나 돼야 다소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후포선적 19t급 채낚이어선 연수호 선장 황연이씨 등 어민들은 "배를 타고 나가보면 울릉도 먼바다와 주문진 근해에 머물고 있는 오징어 어군이 연안으로 모여들지도, 남하도 하지 않는다"며 "잡어까지 씨가 말라 바다에 나가도 잡을 고기가 없다"고 말했다.
△현지 표정=울릉도에서 오징어 건조장을 하는 최영용(61.서면 남양리)씨는 "성어기에 맞춰 오징어를 말리려고 준비를 마쳤으나 말릴 오징어가 없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울릉군청 관계자는 "초기 성어기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태풍이 몰아닥쳐 건조장 시설이 상당부분 파손돼 어민들의 살림이 더욱 쪼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 죽도시장 입구에 있는 포항수협 위판장에도 활어 구경이 어렵다.
오징어 외 다른 고기도 씨가 말랐다는 얘기다.
포항수협 직원들은 "곧 잡히겠지 하면서 한 달을 기다렸는데 여전히 고기가 없다"며 "고개 떨군 어민들이 안쓰럽다"고 입을 모았다.
횟집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포항시 두호동 ㅇ횟집 주인 최모(43)씨는 "8만원짜리 한 접시가 겨우 두 사람분"이라며 "고기가 귀하니 값이 오르고 손님도 줄어 개점휴업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영일수협 우세욱씨는 "오전 6시부터 하루 종일 입찰이 이어져야 하는데 요즘은 고기가 없어 오전.오후 각 1차례면 끝난다"고 했다.
△향후 전망=동해안 항포구가 활기를 되찾으려면 하루 위판고가 1억∼3억원 가량은 되어야 한다.
지금보다는 최소 서너배 가량 고기가 더 잡혀야 가능하다.
수산관계자들은 현 상황이 다음달 중순까지 이어지면 바닷가 횟집과 술집, 일반 식당들도 줄줄이 문을 닫는 상황을 면키 어렵다고 예상한다.
울진 후포수협 김한주(35) 판매과장은 "활어 수집상들도 동해 대신 삼천포.통영 등 남해안과 군산 등 서해안으로 떠나가고 있다"며 "어획부진이 소비부진으로 이어져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어황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동해쪽 연구원들은 "지난 겨울 냉수대 등으로 어자원이 고갈돼 올해는 절망적"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전반적인 분야를 취급하는 연구원들은 "늦어도 다음달 중순쯤에는 평년보다 다소 떨어지겠지만 어느 정도는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통된 의견은 올 가을 이후 내년 봄까지 동해안의 어황이 예년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태풍과 적조에 찢긴 동해안 어민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있는 것이다.
박정출.허영국.황이주기자 (사진) 성어기를 맞았지만 어획부진으로 출어조차 못하고 있는 오징어잡이배들이 구룡포항에 줄지어 정박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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