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IMF 겪고도..." 지역기업 외환관리 '뒷전'

이미 미국, 일본 등이 환율전쟁에 나선 가운데 일찌감치 예고된 달러화 약세에 따른 환율 하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역 기업들의 환 관리 시스템은 IMF 이후 전혀 진전이 없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환관리 비상체제에 들어가 환율 급락에 따른 피해 정도를 최소화하고 있고 아예 연초 사업계획을 세울때 적정 환율을 비교적 정확하게 전망, 수출 채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지역 중소기업들은 환관리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해 뻔히 보고도 환차손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 기업들의 환리스크 관리 실태와 대기업의 사례, 정부차원의 지원시스템 필요성을 알아봤다.

◇실태

(주)성안은 지역 최대 직물업체중 하나이지만 환 관리 시스템은 여느 중소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리딩(앞당기고)앤 래깅(늦추고)이 그것. 이는 환율하락시 수출 결제는 앞당기고 수입계약은 최대한 늦추는 고전적 환 관리 전략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선 단순 투기에 지나지 않아 환리스크 관리 방법에서 아예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환율 하락이 단기간에 그친다면 모르지만 이번처럼 장기간 급락이 이어질 경우 해당 업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구상공회의소조차 이같은 고전적 방법을 수출업체들의 주요 환변동 관리 대책으로 내세울 정도로 지역 환리스크 시스템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을 제외하고는 환위험에 대한 정량적 분석 및 대응은 물론이고 이를 위한 인력 및 조직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환위험 관리 방법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무엇보다 기업 경영층의 인식 부족이 체계적 환리스크 관리 시스템 도입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환율 하락에 따른 지역기업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유로화결제 비중을 늘리는 일이나 수출단가 인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다 금융권 환변동 보험은 너무 비싸 가입자체가 힘들다는 것.

그러나 실 거래금액의 10%에 달하는 높은 이행증거금(일종의 보증금)으로 가입이 어려운 금융권 환 헤징(위험기피)상품들 말고도 국내 중소기업 주변엔 저렴하고 유익한 보험 상품이 적잖다.

최고 1년에서 최소 3일에 걸쳐 연 평균 1천만원의 보험료로 대구시나 경북도로부터 300만~400만원의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출보험공사의 환변동 보험이 대표적 상품.

수출보험공사가 지난 2000년 2월 환변동보험을 도입한 후 환변동보험의 장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인수실적도 급증하는 추세로 2000년 당시 인수실적이 1조1천84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조8천600억원으로 3년 사이에 4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올들어 8월 현재까지 인수실적은 4조14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조8천755억원에 비해 두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대구 경우 올 8월까지 인수실적은 887억으로 지난해 1천억원 수준보다 오히려 줄어들어 환변동 보험 가입률이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중소기업청은 내달부터 이행증거금 10%를 2%대로 절감하고 거래수수료도 대폭 낮춰주는 환리스크 사업을 실시한다.

중소기업청은 지금까지 중소기업들은 외화신용 부족과 소액인 거래규모, 높은 이행증거금때문에 금융회사의 선물환 거래를 이용하지 못했다며 이 제도가 시작될 경우 금융회사를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가는 대기업

원-달러 환율이 1천200원대를 기점으로 점차 하락세를 보이면서 대기업들은 다양한 환리스크 관리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환리스크 관리를 회계, 인사, 총무 등 업무 구분에 추가해 하나의 경영관리 영역으로 정착시킨 점이다.

기아자동차는 올 들어 재무팀에서 10명의 국제 금융팀을 분리했고 현대자동차는 국제금융팀, 수출입관련팀, 재무팀장 등으로 구성한 '위험관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동국제강은 주요 임원들이 참석하는 '환위험관리위원회'를 신설했다.

아예 1년 사업계획을 세울때 적정 환율을 충분히 낮춰 경영 전략을 세우는 대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역의 경우 삼립산업(회장 이충곤)이 대표적 업체로 올 연말 적정 환율을 1천160원으로 책정해 올 초 예상치못한 환차익을 거두기도 했다.

삼립산업은 또 원-달러 환율이 1천150원대로 떨어진데도 불구 한달에 7, 8억씩 연 100억원 규모의 유럽 수출 비중을 유지해 와 환율 폭락에도 채산성 유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들도 올해 사업 계획 수립시 다소 보수적인 1천100원을 기준 환율로 정해 환율 폭락에도 큰 영향은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 역할도 중요

환율 전문가들은 체계적 환리스크 관리 시스템 정착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기업 마인드 변화를 지적했지만 이에 못지 않게 정부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상공회의소 서석민 기획조사 연구원은 정부는 외평채 발행 한도를 늘려 환율 하락을 방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기업 경영층을 중심으로 체계적 환관리 교육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한은은 올들어 환율하락 속도를 제어하기위해 90억달러 상당의 달러를 매입하며 외평채 발행한도를 늘려와 현재 한도는 2조8척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의 이같은 외환 시장 개입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기업 경영에 도움을 줬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스스로의 환위험 관리 노력을 감소시키고 대정부 의존도가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전문 인력 확보가 성공적 환위험 관리의 필수 조건이라며 외환 파생상품 등의 활용을 위해서는 외환, 위험관리, 금융공학, 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 연구위원은 "최근 원화 환율 하락은 기업들에게 체계적 환위험관리 도입의 당위성을 일깨워주고 있다"며 "기업들은 이를 계기로 환율변화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가격이 아닌 품질과 기능면에서의 우위를 확보해 원화절상으로 인한 가격하락 압력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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