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등학교에 밤사이 도둑이 들었다.
훔쳐갈 물건을 찾아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다녔지만 별 소득이 없자, 도둑은 칠판에다 괴상한 낙서를 해두고 갔다.
빼꼭히 적혀 있는 아침자습문제를 마구 지우고 여자의 나체화를 그려 놓았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등교한 아이들은 '선생님이 오늘은 참 희한한 자습문제를 내 놓으셨구나'라고 중얼거리며 공책에다 나체화를 베껴 그리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오덕 선생님의 교육평론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끝에 선생님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계획하고 체험하고 느낌을 나누는 기회가 박탈된 교실에서 문화적 저능아로 전락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셨지요.
잘못 되어가는 교육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던 선생님이 지난달 25일에 타계하셨습니다.<
이분의 업적 가운데 가장 훌륭한 대목은 아마 이 땅의 거짓스런 동시문학에 서슬 퍼런 평론의 칼을 들이댄 것이라 생각됩니다.
"시로써 아이들을 키워가자면 우선 시가 아이들의 가슴을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감동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동시인들은 우스꽝스러운 아이 흉내를 내고, 괴상한 말의 재치와 꾸밈으로 관심을 끌고, 혹은 공연히 어렵게 써서 어리둥절하게 하고, 더러는 괴이한 느낌이나 생각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고 있다.
시를 생활화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거짓스런 시를 주는 것은 그들의 정신을 오히려 병들게 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으로 동시문단을 뒤흔드셨지요.
아이들이 시를 알고 사람답게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펴냈다는 시집 을 꺼내 봅니다.
'①아기를 업고/골목을 다니고 있다니까/아기가 잠이 들었다.
/아기가 잠이 들고는/내 등때기에 엎드렸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방에 재워놓고 나니까/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②오줌이 누고 싶어서/변소에 갔더니/해바라기가/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비에 줬다.
③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나는 죄 될까 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한편 한편마다 진솔한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 있습니다.
1977년에 펴낸 평론집 에서 "과연 우리 동시단에 참된 시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시인이 몇 사람이나 될까?"라는 선생님의 발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동국.아동문학가.문성초 교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