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경구기자의 안동 '요셉의 집'봉사

얼굴없는 후원자가 보내는 단돈 1천원, 호박 한개, 쌀 한됫박이 뭐 소중할까. 하지만 이런 정성이 모여 200여 홀몸노인과 노숙자, 그밖의 어려운 이웃의 허기를 달래는 무료급식소의 밥한끼가 된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성찬이다.

끼니 때를 맞춰 식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들로서는 이곳에서 먹는 한끼 식사가 더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한 마음 없이는…"

천주교안동교구 사회복지국이 지난 199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은 매일 이들을 위한 점심식사가 마련되는 나눔의 터다.

베푸는 이 오만함이 없고 받는 이 수치스러움이 없는 사랑의 장소. 이곳에선 노인 100여명이 점심을 먹으며 배고픔을 잊는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쌀쌀함이 낯선 15일 이른 아침 요셉의 집. 8평 남짓 단촐한 주방 조리대에 음식재료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김영옥(엘리사벳)수녀가 새벽장을 봐서 준비한 것들이다.

오늘의 메뉴는 돼지불고기와 된장국, 무청 무침, 배추김치다.

푸짐하진 않지만 부족할 것도 없는 일식삼찬이다.

오전 9시 조리를 맡을 안동용상천주교회 교우 봉사자 10명이 약속이나 한 듯 모여든다.

1개월에 두세번. 많지 아닐수도 있지만 어지간한 마음을 먹지않고는 귀찮아할 수도 있는 횟수다.

"안동시내 4개 성당 교우봉사자들이 매일 윤번제로 일을 맡기에 부담 없어요" 아름다운 마음을 쓰다보면 표정까지 밝아지나 보다.

◈불교신도들도 품 보태

최근에는 안동지역 불교신도들의 모임인 '보리회' 회원들도 품을 보탠다.

이웃사랑 실천에 네가내가 따로없듯 이곳에선 서로 다른 종교인들도 자연스럽게 교감하는 장을 만들어간다.

"7년째 이곳에 나온다" 는 권말분(58)씨. 익숙한 손놀림으로 "탁탁탁", 일정한 크키로 야채를 썰어내는 솜씨는 영락없는 유명음식점 주방장이다.

"뻔히 쳐다만 보고 있을겐가". 빨리 거들지 않는다고 핀잔을 준다.

"마음은 뻔한데 뭘 할 줄 알야야 하지". 기어 들어가는 듯한 독백을 알아 들었는지 반찬재료 씻고 보리차 끓일 물을 나르라더니 금세 "밥을 푸라"고 한다.

맘먹고 왔으면 소매걷고 일하라는 투다.

바깥도 살펴보고 누가 와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지 알아보려해도 틈을 주지않는다.

밥은 좁쌀을 섞어 노릇노릇 보기도 좋다.

금세 군침이 돈다.

우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배달해줄 도시락 20개를 준비하고 이어 이곳에서 배식할 100인분을 식판에 담았다.

◈"쳐다만 보고 있을거야"

오전 11시30분 식당밖에는 벌써 한끼를 해결하려는 노인들로 장사진이다.

따뜻한 국물이 그리웠을 게다.

분주하게 식판을 식탁으로 나르고 식당문을 열었다.

잦은 걸음이지만 노인들은 입구 동전함에 100원 넣기를 잊지않는다

그 100원은 밥값이다.

공짜면 공짜지 100원은 뭘까. "실제는 무료지만 거저 얻어먹는 무능한 사람이라 자책하지 않도록 동전 한닢을 받지요". 김영옥 수녀의 설명에 남을 배려하는 깊은 속뜻이 따뜻하게 전해온다.

어디에서나 식사시간은 역시 즐겁다.

반찬이 어떠냐는 물음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영감님, 국이 짜다고 괜히 헛투정 해보는 할머니,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때마침 내일은 이곳 노인들이 1년에 두번 가는 온천소풍날이라 분위기는 더 들뜬다.

"이때 아니면 언제 목욕을 하노"라는 말에 "봐줄 영감도 없으면서 목욕은 무슨…". 그러고는 한바탕 또 웃는다.

◈홀몸 노인에 도시락 배달

"빨리 가이시더". 도시락배달 봉사자인 김종원(44.안동시 용상동)씨는 우리와 동행하려다 예정시간보다 30분이 지체된 터라 거듭 재촉했다.

먼저 용상동으로 향했다.

조금전까지 노인분들의 질펀한 농에 덩달아 즐거웠던 기분이 싸늘히 가라앉았다.

첫번째 도시락을 건네준 할머니는 늘 쓰러져가는 한옥집 처마밑에서 쪼그린채 도시락을 기다린다.

핏기 없이 푸석푸석한 얼굴에 관절염을 오래 앓아 걸음도 재대로 걷지 못한다.

도시락을 건네주자 고맙다며 손을 잡아준다.

곧이어 찾은 한 서민 아파트. 초인종을 눌러도 기척이 없다

청력을 잃어 듣지 못하는 90세 할머니는 어제 허리까지 다쳐 누워있었다

부축을 받고 간신히 일어나 앉은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인다

어지러워진 방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려는 우리를 손님인양 엉금엉금 기어서 배웅하는 모습에 코끝이 시큼해온다.

2시간 동안 종종걸음으로 율세동 산동네 등지를 돌아 만난 노인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골이 나도 벌써 났음직한 외로움속에서 도시락 한개로 하루를 연명한다.

평소 돌아보지 못했던 또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부모님을 일찍 여읜 죄값으로 후원금을 내다 성의가 부족한 것 같아 2개월전부터 배달봉사를 도맡았지요".

◈나눌 수 있는 것이 행복

배달을 끝낼 무렵 말을 아끼던 김씨가 입을 연다.

자동차 경정비업체를 운영하면서 일감이 몰리는 세시간동안 봉사활동에 나선다는 것이 곁코 쉽지 않을 일일 터.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이 행복한 것 아니냐"며 되묻는다.

김영옥수녀가 도시락 배달을 끝내고 온 우리를 맞으며 "힘들지 않았느냐"는 인사말을 건넨다.

쑥스럽다.

1일 자원봉사 한다며 생색낸 게 들통난 기분이다.

이런 일을 너무 무심히 여긴 부끄러움도 한몫 했으리라.

"급식소를 찾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지만 경기 침체로 후원자는 점점 줄어 운영하기가 벅차요". 하지만 이들 노인들은 자식들의 부양도, 사회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어 절대 외면할 수 없다고 한다.

김영옥 수녀는 손수 재배한 쌀과 부식을 연중 보내주는 안동시농업경영인협회 등 후원인들에게 거듭 감사하다는 말, 그리고 이런 소외된 이웃의 소식을 좀더 소상히 알려 달라는 부탁과 격려도 잊지않았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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