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묻겠다".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초특급 정치적 발언이다.
이를 둘러싸고 정국은 연일 혼미 속에 빠져드는 듯한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회견 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니 그 충격과 혼란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정계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재신임' 결심과정에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문제가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지만, 재신임 문제는 이미 훨씬 이전부터 논의되었다는 것이 최측근의 설명이다.
만일 노 대통령이 최도술씨의 'SK비자금' 수수의혹사건에 연루되었다면 검찰의 수사가 종료되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이후에 도덕적 책임을 이유로 결단을 내려도 됐을 것이다.
수사결과나 민심을 가늠하기도 전에 '국민들의 불신'을 이유로 국정 최고의 책임을 지고있는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를 전격 표명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비록 '반쪽의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개혁적 의지와 정치적 신념에 희망을 걸고 지지했던 국민들이 어쨌거나 반에나 이른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 중 지난 50년간 지속되어온 한국의 정치 불신과 부패를 그의 재임 단 5년 동안 근절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개혁이란 지속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솔한 선택 아닌 시대의 요구"라고 노 대통령은 말하고 있으나 정치는 엄연한 현실이고 그 현실범위 안에서 개혁적 과제와 정치적 신념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 곧 지혜로운 정치 아닌가. 도덕적 신뢰가 국정운영의 밑천임은 두 말할 여지없다.
그러나 그 문제에 적신호가 왔다고 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면 이는 국민들에게 불안감만 줄 뿐 아니라 혼란스런 민초의 심정을 외면하는 처사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개혁이란 본래 어렵고 힘든 것이다.
이른바 '코드'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하루아침에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정의 수반이다.
비판과 질책의 소리까지도 겸허하게 귀기울이면서 협조와 타협을 이끌어낼 때 비로소 개혁의 기반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재신임이냐 불신임이냐를 점치면서 소모정국으로 치닫는 정치권도 각성해야 한다.
여야 불문하고 재신임 정국을 결코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이라크 파병, 북한 핵, 송두율씨 문제 등 시급한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해야 할 때이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값, 교육, 경제회생 문제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을 조속히 진화하는 데 진력해도 부족할 따름이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비판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던 한나라당도 이제 의회 제 1 정당으로서의 책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정당의 최대 목적이 정권획득에 있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국익이 무엇이고 또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한 채 비판일색의 정국으로 몰아간다면 결국 그 심판을 국민이 어떻게 내릴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재신임 정국'을 비아냥거리듯 "기쁨 못 준 대통령 떠나라"고 했던 기회주의적 언론이 존재하는 한 개혁의 길은 험난하기만 할 뿐이다.
비판을 정략적 이해에만 따라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식으로만 간다면 감시기능으로서 언론이 자칫 오해받을 수도 있다.
그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언론개혁 담론은 이러한 의미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정개혁의 중요 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 정치권은 재신임을 둘러싼 혼란과 불안감을 수습과 통합의 정국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데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재신임 정국을 정치적 합의로 극복하고 대내적으로는 민생안정과 대외적으로는 급변하는 국제외교 환경에 적극 대처할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신임 정국을 야기한 정치권의 부패와 비리구도에 대한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청와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판적이니만큼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쇄신에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을 추진하되 정면돌파보다는 협조와 상생의 정치에 대한 희망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혁적 정치를 열렬히 지지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갖는 소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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