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경북지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무려 713명. 올해도 지난 8월까지 490명이 자살했다.
작년엔 한달 평균 59.4명꼴, 올해는 61.3명꼴이다.
하루 2명씩 극한 상황을 이기지 못해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이들을 자살로 내몬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빈곤이다.
지난 6일밤 포항시 흥해읍 칠포해수욕장에선 한모(50.포항시 죽도동)씨가 분신 자살했다.
'다단계회사 사장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빌린 돈을 못갚고 간다.
(회사가) 양심이 있으면 처리해주길 바란다'. 남겨진 유서 6통에 적힌 내용. 행여 마음이 바뀔까 봐 끈으로 양다리를 묶었다.
너무도 비극적인 죽음. 일년 전만 해도 한씨는 어엿한 사업가였다.
불황으로 영업실적이 떨어지자 렌터카업을 그만두고 모건강종합식품 다단계 판매사업장을 차렸다.
'장밋빛 선전'에 비해 영업은 극히 부진했다.
건강식품 수천만원 어치를 선금으로 구입했지만 월수입은 수십만원에 불과했고 빚은 걷잡을 수 없이 늘었다.
한씨를 더욱 괴롭힌 것은 손발마비 증세를 일으켜 밤잠을 괴롭히는 당뇨합병증. 매달 100만원이 넘는 약값과 치료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낙천적이던 성격도 점차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포항북부서 이담화(38) 형사는 "사망 이튿날에도 한씨 휴대전화로 빚 독촉 전화가 수차례 걸려왔다"며 "세상이 한씨를 죽음의 올가미로 묶어버렸다"고 말했다.
한때 남부럽지 않은 축산부농이었던 안동시 녹전면 김모(45)씨는 지난 3월 중순 밤 11시쯤 야산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지역의 젊은 농사꾼으로 부농의 꿈을 착실하게 키워오던 김씨. 몇해 전 축산부농의 꿈을 이루기 위해 농협 축산자금을 얻어 대규모 축사를 짓고 송아지를 입식했다.
한 때 100여마리가 넘는 대규모 축산농으로 부러움도 샀다.
하지만 몇년전 닥친 소값 폭락과 사료값 인상으로 김씨의 인생역정이 시작됐다.
결정타는 90년대 후반 외국산 생우 수입 허용. 가격 폭락이 예견되자 축산농들은 애완용 강아지 값에 송아지를 투매했고, 이후엔 다시 소를 키우고 싶어도 자금 여력이 없어 손을 들었다.
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농협 빚에 대한 이자도 갚지 못해 연체에 시달려 왔고, 심지어 매년 연말과 연초엔 상황 독촉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농협 연체 때문에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영농자금을 빌려주지 않았다.
막다른 길에 이른 김씨는 결국 기나긴 삶의 고통을 죽음으로 끝냈다.
이웃들은 "지역에서 나름대로 젊고 성실한 농민으로 인정받아온 김씨의 자살은 현재 우리 농촌이 처한 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며 "대부분 농민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좀처럼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다 결국 자살이나 야반도주로 결말을 맺는다"고 했다.
지난 2월초 경주시 감포읍 유모(42.여)씨는 자신의 배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외환위기 직전 1억원을 저리로 빌려 배를 구입했던 것이 화근. 어황이 신통치 않은데다 경기 불황이 겹치면서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돈을 빌린 수협측은 수시로 상황을 독촉했고, 배를 압류한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유씨는 심한 우울증에 빠진 나머지 한많은 자신의 배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또 10월초엔 김천시 구성면 하천 다리 난간에서 마을 주민 신모(65)씨가 목을 매 숨졌다.
신씨는 카드 빚 등 5천여만원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때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며 부농의 꿈을 키웠지만 작년 방울토마토 값이 폭락하고 태풍 피해가 겹치자 빚은 걷잡을 수 없이 늘었고, 결국 농사를 포기했다.
공사장 노동자로 나섰지만 빚 갚을 길이 막막하자 결국 자살을 택했다.
경산에서 가내공업을 하던 김모(44)씨는 최근 집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아내가 석달 전 카드 빚 3천여만원을 남긴 채 가출하자 고민 끝에 자살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또 지난 9월말엔 경산시 중방동 자신의 집에서 홍모(48.여)씨가 생활고를 비관해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또 8월 중순에는 딸(31)이 카드 빚 3천여만원을 갚지 못하고 시집을 가자 이를 고민하던 아버지(60)가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고, 8월초에도 경산시 계양동에서 60대 가장이 딸(30)의 카드 빚 때문에 자살했다.
경산경찰서 정영웅 형사계장은 "올 들어 생활고를 비관하거나 카드 빚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며 "외환위기 직후 상황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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