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수런대는 소문, 먼데 눈발은 치고

애굽어 아스라한 철길을 비켜가듯

욕망도 희망도 없이 또 그렇게 저무는 하루.

다 못 채우고 그예 누가 떠나는지

낮게 엎드려 확, 번지는 진눈깨비

더불어 비비던 살, 먼 길에 남았다

젊은 날 한때를 떠돌던 영혼처럼

덜마른 건초더미 어설픈 약속처럼

찢어진 생각의 흰 조각

서늘한 가슴에 날아든다.

이승은 '설일(雪日)'

이승은 시인은 시조가 가진 정형성이라는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 속에서 언어의 절제미가 느껴지며 또한 일반적인 시조가 지닌 한시투의 관념성을 벗어나 우리말의 미감에 대해 알고 있는 시인이다.

이 시에서는 눈오는 날에 대한 심상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다지 격정적이지 못하고 열정적인 면도 없는, 그냥 밋밋한 일상의 삶에서 갑자기 눈이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고 또 이루어질 것만 같은 심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서정윤(시인.영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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