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 한 겨울 서릿발에 가는 세월 묶고 말았네. 봄 지나, 여름 지나, 가을 지나, 겨울 오고 다시 봄이 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인데 그 법칙 어길 수 없어 이 해 못 보내고 옷깃만 여미네'.
한 잔의 커피와 한 권의 시집이 이 겨울 쌀쌀한 날씨에 마음을 꿰뚫어 버립니다.
삶을 핑계로 메마른 정서를 등한시 하고, 실낱같이 버티어 온 삶을 몸살 나게 합니다.
언제였는지 한 편의 시를 입안 가득 담고 머리 속을 헤집던 그 주옥같은 시간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의 '홀로서기'.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의 '공존의 이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의 '서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의 '사랑법'.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의 '님의 침묵'. 살다가 이 세상을 살아가시다가 아무도 인기척 없는 황량한 벌판이거든 바람 가득한 밤이거든 빈 가슴이의 '미처 하지 못한 말'.
수없이 많은 시구들이 이제는 퇴색한 고서가 되어 너들너들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문득 스쳐가는 한 마디, 한 소절의 시구들이 덮어놓은 상처를 기억하게 하고, 얼마간의 후유증으로 이 책 저 책 책장을 넘겨 잊지 않으려 매달려 봅니다.
하지만 어느새 찾아 온 삶의 현실이 다시 무릎을 꿇게 합니다.
오늘도 쉽게 넘겨지지 않는 오래된 시집을 먼지구덩이 속에서 꺼내어 한 구절 읊어 보지만 한 겨울 한번 매달린 고드름과 같이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란 삶의 현실은 마음의 비수로 꽂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 해를 다 하기 전 찬바람과 커피 한 잔, 한 권의 시집을 가슴에 품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보려 합니다.
박모라 상주대학교 교수.식품영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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