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德談)을 주고받는다.
휴대전화나 이메일에도 덕담이 넘쳐난다.
상투화돼 버린 감도 없지 않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여전히 으뜸인 모양이다.
'복(福)'이라는 말에는 재물.출세.자식.부인.남편 복 등 많은 의미가 두루 포함돼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태 전부터 '부자 되세요'가 회자되듯, 요즘 덕담이 재물 복에 쏠리는 걸 보면 지금 우리의 가치관에는 알게 모르게 물질적 풍요가 깊이 자리 매김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가치관은 절대빈곤층이 늘어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수백억대의 돈이 오가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나 박탈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게다.
▲덕담은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천 사람의 혀는 쇠도 녹인다'는 격언처럼,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그렇게 되라고 하면 그렇게 되어지는 힘이 있는 걸까. 일찍이 최남선은 덕담이란 단순히 '그렇게 되라'고 축원하는 데 끝나지 않고, '이미 그렇게 되셨으니 고맙습니다'라는 언령관념(言靈觀念)이 배어 있다고 풀이했었다.
덕담은 이 같이 상대방에게 희망과 힘, 격려와 기대감을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평소 악담(惡談)이 만연하고 있다.
남을 속이고 해치고 아픔과 슬픔을 주는 말들, 인사치레성 허언(虛言)들이 난무한다.
사실 세치 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사람은 비수를 가시 돋친 말속에 숨겨둘 수 있다'고 했겠지만, '마음의 소리'이며 '정신의 얼굴'이라는 말이 새해 벽두의 덕담처럼 일상에도 확산될 수는 없을까.
▲올해도 전국 곳곳에 해맞이 인파가 넘쳐난 모양이다.
어깨를 쳐지게만 했던 한 해를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새해를 맞고 싶은 행렬이었을 게다.
만성화된 실업, 최악의 경기 침체, 그 끝이 안 보이는 정국 불안과 흔들리는 사회 안전망 등은 우리를 여전히 옥죄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우는 더욱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대기업에 스무번 지원했으나 면접은 단 두번 봤을 뿐'이라는 한 20대의 고백은 실업난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인간 존재의 참 의미는 가치 창조와 삶의 의미 추구에 있다.
성서는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요즘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에 연민과 공감이 가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뭉칫돈과 거짓말이 날개를 달고 있는 정치판, 경제적 고통의 먹구름과 골이 깊이 파이기만 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평범한 서민들의 소박한 희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원을 넘어서는 덕담들이 일상화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지는 건 '왜'일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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