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출범에 대해 걸었던 1년 전의 희망과 기대가 실망과 좌절로 바뀌면서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감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에도 뚜렷한 진전이 없고 세계경제의 회복세 속에서, 특히 이웃 중국의 엄청난 기세 앞에서 우리 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위험한 정도의 실업률을 나타내고 있지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하나 같이 불법 선거자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들은 온통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인들에게 권력은 생명임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략적 공세나 이합집산과는 다른 차원에서 국민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은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에 대해 국민은 정치인들을 질타하되 스스로의 책임은 없단 말인가? 누구를 지지하고 안했든 간에 현재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뽑은 것은 국민이다.
정치자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합법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액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쓰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수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그처럼 많은 돈이 드는 것은 돈을 쓰지 않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만한 성숙성이 우리 국민이나 사회에 아직 결여되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선거자금의 대부분은 유권자들에게 뿌려진 것이며 불법자금이 조달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배달사고'가 날 수 있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이제라도 불법정치자금에 의존하는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면 그처럼 다행한 일이 없다.
그러나 바로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어떻게 돈 없이 치를 것인가에 관한 분명한 대안을 마련하는 노력이 없이 서로간에 불법자금 규모를 비교하며 연일 싸운다고 우리사회의 고질이 된 불법거래의 관행이 뿌리 뽑힐 것인가? 깨끗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보다는 '차떼기'니 '책떼기'니 하는 불법자금 조달 방법에 대한 선정적 보도에 더 큰 지면을 할애하는 언론의 보도자세 또한 우리 국민의 아직도 낮은 정치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이만 했으면 불법자금 문제는 검찰과 특검 조사에 근거한 사법적 처리와 선거를 통한 국민적 심판에 맡기고 보다 중요한 국정 현안에 관한 각 정당이나 후보 지망생들의 입장 정리에 주력할 때까 아닌가 한다.
각 정당은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고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어떤 것인가. 2만불 시대의 도래를 10년째 노래부르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국민소득 1만불 수준에서 우리가 구축할 수 있고 해야 할 사회복지의 하한선은 어떤 것인가를 각 정당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강남의 부동산 값을 잡는 것 보다도 더 시급한 것이 늘어만 가는 고학력 실업자와 노숙자들을 위한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우리의 정치체제를 지탱해 주는 두 개의 축으로 주창되어 온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통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대등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이상(理想)인데 반하여 시장경제는 현실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와 가장 잘 어울리며 결코 무시 못할 사회적 기제를 지칭할 뿐 그 자체로서 이상이 될 수는 없다.
또 한가지 타파해야 할 편견은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의 반대어라는 냉전시대의 사고이다.
혁명으로 탄생한 공산주의가 시장경제의 위력 앞에 굴복한 것이 사실이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경쟁을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의 기제와 사회주의적 이상의 절도있는 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함을 북구의 선진국들의 예에서 볼 수 있다.
분배의 정의를 구현하려면 분배할 거리를 충분히 생산해 내는 튼튼한 경제체제를 자율경쟁의 원리 수용을 통해 구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반면에 복지의 하한선을 끊임없이 높이지 않으면 사회통합과 국민적 역량의 경쟁적 활성화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정치논의에서는 너무도 먼 이야기들처럼 들린다.
그러나 정당이 정당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려면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쟁점으로 부상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못하면 국민이 시작해야 한다.
어차피 나라살림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인호(서울대 명예교수.전 주 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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