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동안의 불법 주차로 4만원짜리 스티커를 받는다면…'. 열에 아홉은 자신이 법을 어겼다는 생각보다 '열 받아' 단속요원에게 화를 낸다. 주차공간이 모자라는 근본적 문제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걸어서 5~10분 거리에 주차공간이 있음에도 '불편하다'며 불법 주차를 예사로 하는 게 현실이다. 운전자와 단속원과의 멱살잡이, 인도위 주차, 불법 주차 차량으로 인한 교통 체증….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닌 우리의 일상이다.
운전 및 주차문화는 곧 그 도시(나라)의 시민(국민)의식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직접 주.정차위반 단속에 나서보니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간 단속
주차단속 부서인 포항 북구청 건설교통과 교통관리계에 도착한 시간은 지난 29일 오후 1시쯤. 정영배 계장이 단속반원인 정광진(43)씨를 소개해 준다. 정씨로부터 건네받은 검정색 파카와 '주차질서'라고 새겨진 모자를 쓰고 단속반원으로 '변신'했다.
포항시내 중심가를 관할하는 북구청의 경우 주간 단속반은 차량 2개조, 도보 6개조 등 모두 8개조. 1개조마다 공무원 1명과 공익근무자(이하 공익) 2, 3명이 붙는다. 일단 시가지를 둘러볼 겸 차량단속조인 김두수(50)씨와 함께 단속을 벌인 뒤 남빈동 철물상가에서 정씨 조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
첫 단속지점은 농협중앙회 대신동 지점 앞. 아벨라, 소형화물차, 무쏘 등 5대의 불법주차 차량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과태료 스티커를 부착하고 증거확보를 위한 사진촬영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다른 곳으로 막 이동하려는 순간 아벨라와 소형 화물차주가 헐레벌떡 뛰어와 "방금 농협에 다녀 왔다"며 통사정을 한다.
"한 번 발부한 스티커는 어쩔 수 없다"며 이해를 구해도 "봐 달라"며 막무가내로 떼를 쓴다. 이어 애원하다가 애원이 욕설로 바뀐다. 첫 단속치고는 험악한 상황이다. 더이상 대꾸할 경우 몸싸움이 날 것 같아 얼른 차량에 올랐다.
공익 김두현(22)씨는 "봐 달라고 떼를 쓰다 안되면 욕설을 퍼붓는다"며 "일일이 봐주다 보면 업무를 못볼 것"이라고 '신참' 단속반원에게 조언한다. 김씨(50)도 "욕을 노래로 들어야지 그대로 받아들이면 일을 못한다"면서도 "가끔 심한 욕설을 들을 때는 속이 뒤집어진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주차단속 근무 발령을 가장 기피한다. 공익 역시 과적 단속과 주차 단속을 가장 꺼리는 근무로 여기고 있다.
다음은 선린병원을 거쳐 나루끝으로 이동했다. 소형화물차 2대와 승용차에 스티커를 붙인 뒤 지프 한대에 다가가자 운전자가 급히 나타나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시동을 걸었다.
4차로인 나루끝→신흥동→대흥동→포항역간 도로 곳곳에도 불법주차 차량이 지천이다. 심지어 인도를 점령한 차들도 있다. "××××번 차량 이동해주세요. 단속합니다"라며 방송을 반복해도 '방송만 하고 그냥 지나간다'는 것을 아는지 운전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김씨는 "불법 주차해 있더라도 차안에 사람이 있으면 단속 않고 '빨리 이동하라'고 주의만 준다"고 말했다. 이를 악용하는 일부 운전자들도 있다. 집에서부터 아이를 태워오는 것이다.
포항역 킴스클럽 앞 도로 안전지대에 불법주차한 대구번호의 승합차에 스티커를 부착하자마자 운전자 일행 4명이 뛰어나온다. "포항이 처음인데 봐 달라"며 사정을 하다 안되자 "그렇다면 4만원짜리 말고 싼 것으로 바꿔달라"며 매달린다. 결국 어렵다는 것을 안 그들은 이내 자리를 뜨면서도 억울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불법주차가 가장 심하다는 남빈동 철물 및 가구거리로 이동했다. 단속원 이대백(54)씨는 "최근 노상 유료주차장이 무료화하면서 주차요원이 없다보니 불법주차가 더 심해졌다"며 "그래도 오늘은 적은 편"이라고 했다.
어떤 간 큰(?) 승합차 운전자는 단속차량 앞에서 보란듯이 불법정차한 뒤 가게에 들러 볼일을 보고 나온다. 여유만만이다.
김씨는 "차안에 공익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아는 상습범"이라고 귀띔해준다.
모자를 눌러쓰고 다녀도 뭔가 어색해 보였는지 죽도성당 앞에서 지나가던 한 선배가 용케 알아보고 놀란 표정이다. "어, 이곳에서 뭐하나". "보시다시피 주차단속 중입니다". 설명을 듣고서야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못하면 얻어맞는 경우도 있다던데…"라며 걱정스런 얼굴이다. 김씨는 "택배, 가스.기름배달 등 생계형 차량은 가끔 눈감아 주지만 '저 차는 왜 단속않느냐'고 항의하면 매우 곤혹스럽다"고 했다.
죽도성당 앞에서 정씨조와 다시 만나 도보 단속에 나섰다. 철물상가→농협중앙회 포항시지부→오거리를 오가며 1시간여동안 20여대를 단속한 뒤 농협 포항시지부 뒷마당으로 가서 잠시 한숨을 돌렸다. 새참으로 붕어빵을 사온 정씨는 "단속은 안하고 놀고있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쉴 수도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야간단속
야간단속조인 김씨와 포항시청에서 다시 만난 것은 오후 6시쯤. 평일 야간 단속은 차량 1개조, 도보 2개조로 나눠 활동한다. 마침 이날은 공익 한명이 병가로 결근한 탓에 차량으로 단속에 나섰다.이미 김씨는 공익들과 함께 오거리→송도가구상가→어시장→두호동 ABC볼링장→롯데백화점을 한바퀴 '치고'(단속반원들의 은어로 단속에 나서는 것을 말함) 온 터다. 먼저 육거리 메가라인(복합영화상영관)쪽으로 향했다.
메가라인 앞은 고질적인 야간 상습 불법주차 지역. 도로 양쪽에 불법 주차한 7대의 차량에 스티커를 부착했지만 영화를 보고 있는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행(?)이다.다시 선프린스 호텔→조흥은행 네거리를 거쳐 포항시내에서 야간 불법주차가 가장 심하다는 번화가인 중앙상가에 도착했다.
공익 도기현(23)씨는 "이곳은 주간보다 야간에 불법주차가 훨씬 심한 곳"이라며 "스티커를 붙이려는 순간 운전자들이 나타났다가 단속반이 지나가면 또다시 불법주차를 한다"며 단속반원과 운전자간 숨바꼭질도 심한 지역이라고 했다.
이곳은 '젊음의 거리'다 보니 젊은 운전자들과의 충돌도 가장 많은 곳이다. 공익 황민식(22)씨는 "멱살잡이는 다반사고 얻어 맞을 때도 적지않다"며 "그때는 증거확보를 위해 사진촬영을 꼭 해야한다"고 겁을 준다. 중앙상가에서만 30여분동안 30여장의 스티커를 끊었다. 거친 항의와 애원, 욕설... 불법주차 운전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한 여성운전자는 "위반 구역인지 몰랐다"며 정중히 사과했다.
밤 10시쯤 포항역 앞에 다시 모였다. 이미 스티커는 동이 난 상태다. "수고했다"며 작별인사를 건네자 김씨는 "불법주차가 몸서리난다"며 반문했다.
"매일 수백건씩 스티커를 끊어도 불법주차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범칙금)를 지금보다 10배 정도 더 올리면 나아질까요?"
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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