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슬로라이프-(6)슬로 웨어

전통 천연염색 인기

# 가을 하늘을 빼닮은 쪽빛, 보기만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갈색, 꽃보다 더 아름다운 주홍색…. 우리 선조들의 삶의 향기가 물씬 묻어있는 한국적인 색상을 담아내는 천연염색이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다.

순수 식물성 염료와 조제에 100% 의존하는 천염염색은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아 환경친화 섬유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천연염색을 배우고, 그 천으로 한복 등을 만들며 자투리 조각천으로 TV 덮개나 상보.장식용 액자.열쇠고리 등 규방공예품을 만드는 강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천연염색으로 만든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日패션 세계적 반향

# 아코디언처럼 주름진 의상으로 유명한 일본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기계적이고 절제된 파리 패션이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그는 일본의 전통의상 '기모노'에서 영감을 얻어 봉제나 재단을 최소화한 자연친화적인 의상을 만들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옷은 육체의 자유를 증대시키는 것'이라는 패션철학을 바탕으로 자연친화적인 기모노를 재해석한 그의 옷은 세계 패션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바느질.십자수.퀼트.니트

전통의상을 입자는 슬로 웨어(Slow Wear)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재봉틀 대신 오랜시간 정성을 들여 바느질하며 십자수와 퀼트, 테디베어, 니트류 등을 만드는 인구가 증가추세다.

또 모시나 삼베 등 전통적인 소재나 방법으로 만든 옷감, 감과 꽃과 같은 천연 염료로 물들인 옷감, 콩과 대나무, 황토, 녹차, 홍삼 등 친환경소재가 들어간 옷이 소비자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입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밀려났던 한복 등 우리 전통의상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가 하면 편안하고 단순함을 강조한 선(禪)의상, 미니멀리즘 의상도 유행하고 있다.

첨단을 자랑하는 패션에도 시나브로 '느림의 미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접속이 몇초만 느려도 분통을 터뜨리는 현대인들이 '드르륵~'하면 빠르게 많이 만들 수 있는 재봉틀을 마다하고 퀼트 등에 빠져드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퀼트 경우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약 3만명이 활동 중이며 바느질이 취미인 이들은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될 정도다.

한국국제퀼트협회는 "차분하게 몰두하는 동안만은 잡념을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명상하듯 한땀 한땀 하는 이들이 많다"며 "바늘로 하는 수공예가 인기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퀼트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는 퀼트 콘테스트만 해도 연간 1천회 이상 열린다고 한다.

전통 규방공예 맛에 푹

누비와 같은 우리 전통의 규방공예도 느리게 살고 싶은 여성들에게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김경자(59.여)씨는 "열중하다 보면 새벽 2~3시까지 불을 켜놓고 바느질을 하는 일도 다반사"라며 "한 땀 뜨고 쉬고, 한 땀 뜨고 쉬는 식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매력에 누구나 빠져들게 된다"고 털어놨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완성할 수 있는 모시, 삼베 등 전통적인 옷감도 현대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옷은 물론 마(麻)를 재료로 만든 매트리스 커버, 이불 커버, 베개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또 녹차 내의, 황토 내의에 이어 대나무 재킷, 콩 재킷 등 기능성 겉옷도 속속 출시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패션 등 대형 의류업체들은 지난 해 봄부터 대나무, 콩 등 천연성분이 함유된 기능성 소재로 정장을 만들어 내놓았다.

제일모직 한 관계자는 "대나무.콩 원단은 쾌적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고 항균.항알러지.자외선 차단 등의 효과가 있다"며 "웰빙 붐으로 환경친화적 소재가 각광받고 있어 천연섬유 제품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짠 면 티셔츠 입고…

슬로 웨어 바람은 외국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일본 지바현 가모가와에서 면화농장을 하는 다하타 다케시씨는 20년 전부터 전통 면제품 짜기를 고집하고 있다.

기계로 짠 수입 면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는 농장을 돌보고 나서 하루 2시간씩 360m의 면사를 짜고 있다.

보는 사람은 한숨부터 나올 정도지만 그는 "천천히 공들여 직접 짠 면만큼 탄력성이 좋고 흡수성이 뛰어난 소재는 없다"며 자신이 짠 면 티셔츠를 늘 입고 다니며 자랑한다.

웰빙 마을로 유명한 영국의 토트네스 주민들은 엘리자베스 시대 의상을 즐겨 입고, 유기농 면(綿)으로 만든 옷을 만들어 입으면서 소박하고 느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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