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 기자의 영화보기

'실미도','쉬리','친구','태극기 휘날리며'….

한국 흥행영화들이다.

크게 흥행한 영화에는 일정할 룰이 있다.

남성적이고 진지하다는 것이다.

주인공도 모두 남성이다.

이야기의 흐름도 거칠고 폭력적이다.

이데올로기도 큰 몫을 차지한다.

남북의 문제를 우스꽝스럽게, 또는 로맨틱 코미디로 접근한 영화들이 관객들로부터 모두 외면당했다.

관객은 아직 남북의 이데올로기는 '우스운'코미디나, '남의 이야기'처럼 객관화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에 '신파'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가 놀라운 흥행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 코드가 '신파'라는 비판이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두 편 모두 눈물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영화다.

"왜 여기 계세요…왜 여기 이러고 계세요?…구두 만들어서 오신다고 했잖아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백발이 된 동생 진석이 형의 유골을 보고 오열한다.

50년 여름.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구두통을 든 형. 혹 동생이 다칠까봐 전쟁터에서 미친 듯이 싸운 형이 이름 없는 능성에서 유골로 나타난다.

최고의 구두를 만들어준다고 한 약속을 떠올리면서 늙은 동생은 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쥐어뜯는다. 가장 많은 관객이 눈물을 쏟는 장면이다.

'실미도'에서는 피로 버스에 이름을 적는 장면이다.

김일성을 죽이려고 훈련된 그들이 간첩으로 오인받는다.

그것도 억울한데 이름마저 남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버스에 자신의 피로 이름 석자를 적는다. 곧 죽어갈 그들의 비장미 넘친 결단에 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신파'는 한국 관객의 보편적인 정서다.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신파에 길들여져 있다.

약간의 비약과 과장도 눈물로 모두 용서된다.

영화기획자로서 신파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또 눈물을 흘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파가 저급하다는 것은 '상투성' 때문이다.

같은 레퍼토리로 매년 관객을 울리던 악극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이다.

신파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관객에게 영합하는 신파고, 다른 하나는 관객을 배려하는 신파다.

'영합'과 '배려'는 '이야기 흐름의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는가'의 차이다.

영합한 신파는 '뻔하다'는 말을 듣고, 배려한 신파는 '재미있네'라는 말을 듣기 쉽다.

상투성을 배제한 재미있는 신파. 한국영화 흥행가도에 또하나의 룰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