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한강에 잘린 손가락이 까맣게 떠내려왔다고 서울 사는 한 지인이 고향에 내려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얘기했다
물론 '지도자를 잘못 뽑아 이 고생을 하니 투표 잘못한 손가락을 잘라 그 대가를 치른다'는 자성론을 비아냥하는 말이다.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아리스티데스는 오스트라시즘(패각추방)을 위한 투표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써 달라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상대가 저 유명한 정계의 거물 아리스티데스인지도 모르고 "내가 글자를 몰라서 그러니 여기에다 아리스티데스라고 써 주실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오자 기꺼이 자기 이름을 써 준다.
그러고는 아테네에서 추방된다.
당시 그 남자는 "아리스티데스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느냐"고 묻자 "나는 그 사람 얼굴도 모릅니다.
다만 그가 위대한 인물이라느니, 정의의 사도라느니 하는 말을 하도 여기저기서 하기에 듣다 보니까 진저리가 나서요"라고 대답했다나.
정치인 모습이 우리들 자신
비록 시공이 다른 2천500년전 지구 반대편 나라의 이야기지만 사람을 선택하는 투표라는 점에서는 같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알아보고 선택하는가? 아테네에서 아리스티데스를 쫓아냈듯이 소문만으로 우리의 귀중한 선택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는지 선거철을 앞두고 반성해 볼 일이다.
국민들은 탓한다.
정치가 잘못됐다고. 수준 이하의 정치가 이 나라 경제를, 교육을, 사회를 이 꼴로 끌고 가고 있다고. 정치인은 국가의 안위나 경제 발전이나 국민의 생활은 아랑곳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당선만을 위해 노력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 문제들의 근본적 원인으로 정치를 핑계댄다.
그러나 이런 정치혐오 뒤에는 또다른 정치적 음모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그렇게 많은 정치인 지망생들이 방방곡곡에서 발기하고 있음이 이를 증거한다.
기성 정치인들이나 정치 신인 모두가 "그래서 더욱 내가 당선돼야 하고, 우리 당이 다수당이 돼서 국정을 주물러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것이 그거다.
분하지만 우리 현실을 그대로 비춰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자 한계이니까. 외국에서 정치인을 수입해 오지 않는다면 어차피 우리 중 누군가가 이 일을 맡아야 할 일이기도 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사회, 개인의 삶의 형태까지도 정치에 종속돼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X이 그 X' 이라며 냉소만 해서는 안되는 이유중 하나다.
후보자 알려는 노력해야
총선이 두 달도 채 못 남은 지금 전국 각지에는 사실상 예비후보들이 등록도 않은 채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아직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말은 않지만(하면 선거법위반) 자신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 아무개라는, 얼굴을 알리려는 사실상의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는 이미 시작됐다.
유권자인 국민들은 궁금하거나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해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 더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고 자신의 비리나 부도덕, 무능 등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우면 지도자로 나설 생각을 아예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문득 나타나서 표를 달라는 '그'가 누구인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그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유권자의 몫이다.
개인의 능력이 다르고 능력을 발휘할 분야가 다르지만, 세계관과 역사관이 다르지만, 유권자는 각자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선택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잣대에 맞는 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
'그때'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는지, 비겁하지는 않았는지, 배반할 싹수는 보이지 않는지….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전장에서는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의 권한이요, 임무다
전국 각지의 대학들이 학교별로 졸업식을 갖고 있는 즈음이다.
그러나 졸업의 기쁨보다는 청년실업률 최고의 시대,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졸업생들의 표정은 밝을 수가 없다.
그를 뒷바라지해 온 부모님들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우울함이다.
일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백수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 이것도 다른 곳에서 핑계를 찾을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잘린 손가락이 낙동강을 메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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