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부부-(2부.8)달라진 결혼 조건

"결혼? 조건도 따져봐야죠".

결혼을 하는 데 있어 '사람 하나 괜찮으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외치던 연희(엄정화)는 조건에 맞는 상대를 찾아 여러 번 선을 보던 중 대학강사 준영(감우성)을 만난다.

연희는 조건은 별 볼일 없지만 사랑에 빠진 준영과 결혼하지도, 헤어지지도 않는다.

결국 연희는 결혼은 조건좋은 남자와, 연애는 준영과 하기로 한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수정(하지원)도 사랑이냐 조건이냐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

드라마에선 통상 조건과 사랑 사이에서 사랑이란 눈물겨운 선택을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팍팍한 세상에서 결혼마저 생존전략이 되고 있는 것. '시집.장가 잘 가서 남는 장사 하고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 여자들이여, 슈퍼우먼이 돼라

"이젠 집에서 살림이나 살겠다는 여성들은 결혼하기도 힘들어요".

커플 매니저들은 직업을 갖지 않은 여성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도 상대방을 소개받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공무원인 한 여성은 양가 부모 상견례를 모두 마치고 결혼날짜를 잡은 후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고 살림하며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가 당장 파혼당한 사례도 있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남성들이 상대 여성의 기본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직업.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커플 매니저 조경옥씨는 "최근 1, 2년 전부턴 여성이 직업이 없다고 하면 남성들이 아예 만날 생각을 안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그 이유로 여성의 '자립심'과 '사회성'을 꼽았다.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남성들은 자신이 일자리에서 밀려날 경우 신문배달, 우유배달이라도 해서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배우자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남성들의 연령층이 낮을수록 이런 경향이 강해요"라며 달라진 결혼조건에 대해 말했다.

요즘 남성들은 '괜찮은 외모에 살림과 육아도 잘하면서 경제적 능력도 있는' 슈퍼우먼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여성들도 결혼 상대자로 점점 더 어린 남성을 찾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커플 매니저 이승희씨는 "몇년 전만해도 여성들이 통상 서너살 연상의 남성을 찾았지만 지금은 한두 살 차이가 고작이고 연하를 찾는 여성들도 많다"면서 "이는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여성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고 사회적인 동료로서 남편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타일이 중요하다!

김동욱(33)씨는 지난 설날때 부모님의 강권에 못이겨 선을 다섯 차례나 봤다.

김씨는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에 다니고 있는데다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주변에서 '사람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또 이미 집까지 마련해둔 상태. 하지만 수십 차례 선을 봤지만 아직 이렇다할 상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김씨는 '내 스타일에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라고 나름대로 분석을 하고 있다.

머리숱이 많지 않아 원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것. 김씨는 "여성들이 외모를 많이 따지는거 같아 요즘엔 외모나 패션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최근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커플 매니저 5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여성들이 찾는 이상적 남성상이 탤런트 최수종에서 김래원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엔 최수종과 같이 가정적이면서 순한 꽃미남 스타일을 원했다면 요즘 여성들은 개성있는 김래원 스타일을 원한다는 것. 김래원은 깎아놓은 것처럼 미남형은 아니지만 부담스럽지 않은데다 서글서글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결혼적령기 여성들이 생각하는 이상형에 가깝다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여성들이 단순히 '얼굴'이 아니라 '스타일'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스타일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전문직 여성 이정은(29)씨는 "대화가 통하는 건 기본이고 외모가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키가 크면서 예쁘장한 스타일을 좋아해요. 특히 옷 잘 입는 남자는 어디서나 눈에 띄기 때문에 패션감각이 중요하죠".

결혼, 좁아진 취업문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능력, 외모, 등이 선결되지 않으면 뚫기 힘든 좁은 문이 된 것인가?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사진 : 사랑과 조건을 두고 갈등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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